"선생님, 그동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7세 후반 나에게 왔던 학생이 10살 후반이 되어 떠나게 되었다.
햇수로 4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처음부터 의젓했던 그 아이는 혼자서도 잘 오고 하원길이 늦은 시간이어도 씩씩하게 잘 걸어갔다.
국제 학교 학생이라 학습 습관도 어릴 때부터 잡혀 있었고, 어머님도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분이었다.
말은 많이 없지만 성실하고 착실한 그런 학생.
예의 바른 어머니.
그 아이가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온 두유 상자.
할아버지가 사업으로 하신다는 죽염이 들어간 두유.
마셔보니 여느 달기만 한 두유랑 달리 진짜 건강함이 느껴지는 두유다.
그것보다 더 마음에 와닿은 건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가
무거운 두유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가야지 생각하고 들고 왔다는 그 사실이었다.
"지훈(가명)아, 엄마가 자전거에 싣고 가라고 알려주신 거야? 많이 무거운데."
"아니요, 제가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자전거에 싣고 왔어요. 제 자전거에 바구니가 있어요."
혼자서 그런 생각까지 한 아이가 기특했다.
이미 들어오자마자 건넨 말에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20대에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는 몰랐던 감정이었다.
헤어지면 그저 그러려니 했고, 금세 다른 학생들과의 유대에 몰두했다.
슬픈 감정은 사실 많이 느끼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마흔이 넘으니 좋은 점도 있고, 슬픈 점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는 것이고, 어느새 커버린 어린 학생의 말에
서글픔, 미안함, 아쉬움, 이 모든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옮기게 될 학원도 직접 가서 상담하고 커리큘럼도 들어보았다.
좋은 학원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올 한 해 시작부터 이번 여름까지 수많은 일로 몸이 너무 힘들다 느꼈고, 일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상 포진 초기 증세에다 호르몬 이상까지 나름 적신호가 있었다.
그저 수업이 줄면 좋을 줄 알았다.
바람이 쌀쌀해지니 알겠다.
헤어짐은 약간은 따듯하면서 서늘하다는 것.
황혼빛처럼 물들어가는 색이 있다는 것.
이 아이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
먼 훗날 혹시 나란 선생님이 기억난다면 괜찮은 기억이길 바란다.
사람이란 간사한 면이 있어서 금방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겠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이 계절의 헤어짐은 조금은 슬프다.
그는 10월을 사랑했다.
늘 사랑해 왔다.
그 안에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또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 같은 것.
- 재클린 우드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