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세기말, 대중 매체에서 약 2년 후면 세기말이 온다고 떠들어대던 시점이었다.
컴퓨터가 0을 인식하지 못한다나 뭐라나.
우리의 장희수, 장하다 장희수는 그 순간에도 침대에 엎드려 열심히 <20세기 소년>을 읽고 있었다.
'20세기 소녀 장희수, Y2K가 오건 말건 내 갈 길 간다.'
그렇다. 그녀는 나름 독서광이었다.
독서의 범위는 상당히 광대하다. 편견 없는 독서, 성역이 없는 독서의 선두주자가 바로 장희수라고나 할까.
언제부터였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책이라는 녀석을 무작정 좋아하게 된 것은.
엄마한테 물어보니 어릴 적 책을 읽어주다가 갑자기 글을 읽었다고 했다. 엄마가 읽었던 바로 그 뒷부분을 이어서. 내 자식 천재병은 엄마에게 없었는지 글을 읽는 아이가 마냥 신기했다고 했다. 소위 독서 육아를 한 것일까. 당시엔 뭐 그런 말도 업었겠지. 아,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독서와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편견 없는 독서를 하지만 편독을 하기에 과학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오로지 문학, 에세이, 소설 한 놈만 팬다. 며칠 전 학교에서 소풍을 갔을 때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 권을 가지고 가서 읽었는데 친구들은 희수는 책을 참 좋아해라고 말할 뿐 유난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착한 계집애들.
좀 재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딜 가던 책 한 권은 가지고 다녔고,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정해도 꼭 서점에서 만났다. 성역이 없는 희수에겐 만화책도 소중하고 매달 나오는 잡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학과에 가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희수에겐 영화 잡지를 읽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다. 프리미어, 스크린, 씨네 21까지 읽어줘야 영화판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할리우드 소식은 프리미어나 스크린으로, 국내 영화계와 깊이 있는 텍스트는 씨네 21로 읽어줘야 개운했다. 중간중간 패션잡지를 읽는 것도 당연히 멈추지 않았다. 희수 엄마는 대학만 가면 살이 절로 빠진다고 했으니 그것만 믿고 있기로 했다. 그렇다면 희수가 할 일은 뭐다, 바로 현재 패션의 흐름을 익히고 앞으로 코디를 할 의상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대학만 가봐라. 다 입어주리라. 오늘도 수지를 기다리며 다짐하는 희수였다.
희수는 단짝 수지와 쿵작이 잘 맞았다.
함께 야간 자율학습을 제치고 영화를 보러 가주는 것도 수지였고, 아스테이지를 사서 영화 잡지를 뜯어 필통을 함께 도배하는 것도 수지였다. 희수보다는 현실 감각이 있어서 가끔 쓴소리도 잘했지만 다 애정 어린 말이었다. 결국 수지는 대학까지 가서도 희수와 단짝이 되었는데,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고 캠퍼스 안 잔디에 희수가 전을 부쳐도 등을 두드려주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수지는 희수만큼 책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희수가 책을 읽는 모습이나 좋아하는 것을 꽤나 존중해 줬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수지야, 이번에 잡지 어떤 거 살까? 키키랑 에꼴이랑 다 마음에 드는데."
"그럴 땐 딱 방법이 있지. 사은품을 봐야지. 어떤 게 더 좋은가.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히히."
결단력도 넘치는 수지였다.
인간은 참 희한하다.
급한 일을 앞두고 왜 딴짓이 하고 싶은가.
고등학생 희수에게 급한 일이란 무엇인가. 바로 시험이다.
다음 주가 당장 시험이지만 희수 눈엔 하필 이런 순간 재밌어 보이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운명의 장난이란 얄궂다.
희수는 고민하지 않는다. 영혼이 이끄는 길을 가는 아이기 때문이다.
<<봉순이 언니>>를 읽어본다. 요즘 가장 핫한 소설이라는 이유로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 터너라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는 혀를 끌끌 차며 나가신다. 공부는 안 하고 소설을 본다 뭐 이런 뜻이겠거니 짐작을 해본다. 오늘도 탈출을 꿈꾸는 희수다. 읽고 싶은 책 맘껏 읽고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나이 18세가 아니던가.
시간이 흘러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한 희수는 대학 생활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고등학생 때보다는 약간 더 어른이 맞으려나.
마음대로 정해 보는(실은 수강 신청 전쟁인) 시간표도 좋고, 점심 메뉴도 학식을 먹을지 학생회관 내 롯데리아로 결정할지 고민하는 것도 즐겁다. 핸드폰이란 것도 생겼으니 내키는 대로 친구랑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좋다.
더 좋은 건 학교 도서관이다. 여기서 살고 싶을 정도로 책이 많다.
여전히 희수의 학과 성적과 독서량은 상관이 없다.
아,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이 만점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좀 책의 영향일지도.
어느덧 대학졸업반이 된 희수는 뭘 하면 좋을지 막막하다.
사실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교직 이수를 했으니 임용 고시를 봐야 하나, 동아리 선배들이 준비하는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하나.
어디 취직이라도 해야 하나. 희수의 마음만큼이나 집안 사정도 갈팡질팡이다. 그렇게 어려웠는데 왜 몰랐던 걸까. 희수는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자 싶지만 그녀도 이제 겨우 대학생일 뿐이다. 알바를 하면서 앞길을 준비해 보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다. 마음이 심란할 때 희수는 역시나 책을 찾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다녔던 시립도서관으로 가서 돈 버는 법에 관한 책을 읽어본다. 부에 대한 마음가짐, 돈에 대한 생각, 세계의 부자들, 한국의 부자들. 결국 투자를 하려 해도 종잣돈이 필요함을 깨닫고 저축을 먼저 하자는 결론에 이른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빌려서 읽고 쓴다. 좋은 문장, 힘이 되는 문장을 메모한다. 메모 노트가 쌓여갈수록 희수는 희망이 생긴다. 다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안정이 올 거라는 희망. 다 잘 될 거라는 긍정심. 어쩌면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책으로 형성된 희수의 마음 덕분일 거다.
엄마가 심어준 책에 대한 좋은 인상, 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 다양한 스토리에서 얻은 희수 스스로의 희망. 여전히 친구 수지도 곁에 든든하게 있다. 앞으로 읽을 책도, 읽었던 책도 많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희수의 인생이 다 들어있다. 이제 희수는 자신을 돌봐줬던 그 이야기 속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 스토리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책을 사주셨다. 집안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어 있던 날도 희수와 동생의 책은 안전했다. <여자의 일생>,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여전히 희수 곁에 있었다.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에드몽 당테스처럼 복수를 꿈꿨고,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당당하고 싶었던 희수는 안전하게 살아왔다. 그건 다 책 덕분이었을 거다. 가끔은 짓누르는 책의 무게에 답답하기도 하고, 읽지 않아도 손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지는 그 녀석, 책. 그 덕분에 여기까지 희수가 왔다. 이제 희수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이 된다. 쓰는 사람은 결국 스며드는 사람이 된다. 이제 희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가 우려했던 Y2K는 오지 않았고, 희수는 21세기에 무사히 안착했다.
희수의 집도 이렇게 무사 착륙을 할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