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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이름, 책이라는 명함.

by 마음돌봄

드디어 2025년 7월 10일 첫 책이 출간되었다.

3개월이면 다 쓸 것 같았던 영어 고전 필사 책이었지만 마음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뜨거운 여름날 계약한 책은 다음 해가 되어 다시 초여름의 햇살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일 년은 보내봐야지 하는 말을 하는데

계절의 변화는 어쩌면 이리도 정확한지, 세상이 기후 변화로 만새기가 인천 바다에서 잡힐지라도

절기의 원칙은 쉬이 변하지 않을 듯하다.


돌이켜보면 작가라는 일을 막연히 선망했었다.

어릴 때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작가들은 죄다 뿔테 안경을 쓰고 있거나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고액의 고료를 받는 매력적인 일로 브라운관에 등장했고 이제는 스타 작가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다. 책을 출간하겠다는 목표, 작가라는 네임을 획득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은 오롯이 결과를 맺었지만 그토록 부르짖던 베스트셀러 딱지는 붙이지 못했다. 무명의 작가, 게다가 영어 고전 필사라니. 영어 업계에서 한자리 차지했었더라면 또 달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하나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나 홀로 외쳐본다. 고전이라는 일생의 사랑, 잔잔하게 밥을 먹고살게 해 준 영어라는 욕망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나의 첫 책. 책 쓰기는 기획이 다를 외쳤던 나에게 영어 고전 필사 책이라는 기획 제안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기적 같고 감사한 일이다. 이후로 필사 책을 한 권 더 출간했고 필사라는 나만의 장르를 찾았기 때문이다.


책 출간은 산고의 고통과 같다는 말이 있다.

신체가 찢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에 비할 만큼 엄청난 압박감의 작업이 책 쓰기이면서 한편으론 행복한 작업이기도 하다. 활자가 아름다운 종이 위에 펼쳐지는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영롱함이다. 나무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무지막지하게 억눌러 가면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고,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선망의 대상을 이뤄내고 있으니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책만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입에 가족 입에 밥을 먹이는 숭고한 직업도 함께해야 하므로 더욱더 치열한 작업이었다. 하루는 새벽 네 시까지 원고를 쓰는데 드라마 한 편을 축약해 보면서 쓰기도 했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행동이냐고. 이미 새벽 시간이 두 시가 지나면 어차피 사람의 정신은 안드로메다 저편에 있다. 엉망인 초고를 피드백받았을 땐 어찌나 부끄럽던지 정신 차리고 쓴 두 번째 원고 피드백에서 수정할 부분이 단 세네 군데뿐이었을 땐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했던가. 2025년의 6월 펀딩부터 시작했을 때 나름 마음이 분주하고 답답했다. 실물 책을 보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로써 책을 구경하고 구입만 하던 온라인 서점에서 내 이름 석자와 첫 책이 보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누구 때문에, 뭔가 나 죽지 않았다를 보여 주고 싶어서, 혹은 평생의 꿈이라서 등등의 여러 이유를 대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론 그런 이유들이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동력이 된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하나의 꿈이었다는 순수한 이유를 떠나서 죽어가는 마음에 생명을 주고 싶은 마음, 무너진 자존감과 가난한 생각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책을 써야겠다 생각한 이유기도 했다. 지금까지 자존감이란 한 번 무너지면 은근히 회복이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자존감을 키워오다가도 한순간에 그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세우고 또 공고히 다지고 할 수밖에 없다.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 책이라는 명함이 생겼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작가님이라 불리는 순간들. 모든 것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자, 그럼 이제 해피엔딩 인생열차 고고씽일까? 갑자기 인생이 찬란하게 확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다시 시작이다. 인생은 늘 새로운 날들의 연속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잠 못 자고 치열하게 글을 썼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마음을 돌아보고 치유한다. 새로운 희망의 눈빛을 갖게 한다. 기록의 힘을 여실히 느낀다. 그다음을 기약하고 싶어진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일이다.

지난 나의 이야기가 글 속에 다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을 밝힌다.

체력과 끈기로 무장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스토리텔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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