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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풍과 김도기

by 마음돌봄

최근 본방까지 사수하며 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태풍상사', 1997년 IMF 시절이 배경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귀에 확연히 들어오는 서울사투리, 문화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대한민국.

사실 오렌지족보다는 X세대나 밀레니엄 세대인 N세대의 중간이랄까.

아이돌 문화가 태동되던 시기이고(무려 나는 아이돌 1세대다) IMF라는 상황에 외는 고등학생이던 나에겐

그저 평범했던 그 시기.


식구들은 주인공이 잘생겨서 보냐고 하지만 사실 나에겐 목적이 있다.

책이든 영상이든 인풋의 양을 늘리는 게 주된 이유다.

어설픈 시선이나마 캐릭터를 분석해 보고 전개를 살펴보고 뭐 그런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경험한 세상의 이야기여서 더 끌린 것도 있다.

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 입장에선 주변의 모든 텍스트와 매체가 다 공부 아니겠는가.

당연히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주니 몰입감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여기까지가 태풍상사 14화를 봤을 때의 글이다. 15화는 본방을 살짝 건너뛰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1박 2일에 걸친 김장이라는 이슈와 김장하는 와중에 다음 주 월요일 강의안을 작성했어야 했으며 드라마 예고편을 보니 주인공 강태풍이(우리 태풍이가) 고생을 해도 너무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살짝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가. 모범택시 김도기처럼 절대 무적이면 안될까.

결국 김도기가 다 뿌셔뿌셔 해버리니 안심하고 끝까지 볼 수 있어서 참 좋지 아니한가, 모범택시. 제 아무리 절대악이 나와도 다 응징해 버리는 우리의 슈퍼영웅 김도기. 그 지점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던가. 태풍이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산 하나 넘었다 싶으면 그다음 산이 짜잔 하고 대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태풍상사 16화를 무사히(?) 본방사수 하면서 깨달은 것은 강태풍에게는 이런 시련과 행복의 반복이 진심으로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보기 드물게 16화라는 긴 호흡(예전엔 16화가 기본이었는데 말입니다), 타고난 감이 있는 긍정 청년 강태풍의 명랑 발랄 성장기,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추억과 가족 그리고 사랑. 이 모든 인생이 있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26살의 청년이 망해가는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아 무조건 승승장구 일을 잘하는 것도 현실성이 정말 없으니 결론적으론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그저 시청자 입장에서 속이 상했던 것일 뿐. 게다가 강태풍을 라이벌로 혼자 생각하는 표현준은 존속상해죄까지 저질렀으니 더 불쾌했던 건지도. 당시엔 마침 '공공의 적'이라는 존속살해를 사이코 범인이 주인공인 영화도 있었다. 이런 것까지 고증을 한 것인가 느껴져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된 시대는 앞서 말했듯 나에겐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다. 낯설지 않은 친근한 시대이며 소중한 나이이기도 하다. 사이비종교, 휴거, 다단계 사업까지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업이라는 미명아래 다단계 사업은 가정에 파고들었고, 휴거를 등에 업은 사이비종교는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고 대학생이 되었고, 학식을 먹는 점심시간엔 학교 식당까지 들어와서 각종 카드사에서 대학생들에게 카드를 무조건 발급해 주던 시절이다. 카드 한 장으로 운동, 쇼핑, 여가 생활을 즐기는 연예인의 광고가 유명했고, 모두 부자 되세요 라는 카피가 유행했던 시절의 이야기. 그 한복판에 내 인생이 있었기에 태풍이가 '무'에서 '유'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와닿았었는지도 모른다. 김도기처럼 천하무적이 되고 싶지만 우리네 현실은 강태풍과 같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고, 때론 죽을 만큼 힘들기도 하다. 어른이 되고서야 다시 말하면 어른이라고 타인에게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인생이 고해라는 것을.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바로 사람,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다. 태풍이도 엄마가, 태풍 상사 직원들이, 친구가 있었으니까. 별이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니까. 드라마 속 상황이고 대사지만 듣고 싶은 말이 녹아있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드라마 속에 존재에서 더 끌렸던 게 아닐까.


사실 현실에선 강도기처럼 되고 싶다. 강해지고 싶고 무적 캐릭터가 되고 싶다. 나의 여러 가지 꿈 중 하나는 블랙위도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풍 같은 삶이 끌리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옳은 방법으로 올바른 것을 향해 나가는 것. 내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 단순히 지나간 향수만으로 과거를 돌아봐서 좋았던 드라마가 아니라 내가 있었던 시대여서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서 태풍이처럼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 작품을 기다리고 즐겨봤었나 보다.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이런 작품을 만든, 이런 대사를 쓴 작가님이 부럽고 IMF소재 아까비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도 이유가 되겠다. 12부작 빠른 호흡의 드라마가 유행인 요즘 16부작인 것도 추억 제대로 소환완료.









'우리들이 꽃보다 향기롭고 돈보다 가치 있다.'
'돈도 없고 뭣도 없어도 곁에 사람만 있으면 된다'
'꽃이 지는 것이 아니다. 꽃은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있는 거야. 열매를 맺기 위해서.'
'원래 안 하려고 하면 핑계가 생기고, 하려고 하면 방법이 생기는 거죠.'
'일이란 게 말이야 걸음마와 같아서 넘어지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어.'
'슬픔은 맞서 싸우는 게 아니에요. 그냥 흘러가게 두는 거지. 살아남는 게 먼저잖아요.'
'제 아버지에게서 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늘에 별이 지금 안 보인다고... 없는 거예요?'
'나는 버티는 게 아니라 매일 무너지는 걸 연기하는 거야.'
'돈 없어도 양심 없는 사람은 되기 싫어.'
'우린 다 누군가의 실수를 덮어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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