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11월 30일까지 두 번째 꼭지 마무리해서 올립시다."
"12월엔 모아놓은 글 편집해서 투고하게요."
으쌰으쌰 으랏차차.
햇수로 벌써 4년 차인 북클럽 멤버들과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
열심히 독려하던 멤버 중 하나였던 나란 사람은 지난여름부터 동력을 잃고 헤매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많이 마음이 정리된 상태이고, 예전의 유머 감각(?)도 많이 회복했다(고 혼자 믿는다).
각자 세 편씩 글을 쓰기로 했는데 나머지 두 편의 글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의 글을 모아 갈무리해주기로 한 작가님은 본인 책 집필만으로도 바쁜데 앞장서서 총대를 매주 었다.
바쁘지 않은 현대인들이 한 명도 없는 이 세상에서 나 또한 투잡 쓰리잡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쓸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너무 완벽한 글을 쓰려고 했던 탓일까. 혹은 대학원이냐 여타의 수업이냐의 핑계로 마음이 들뜬 탓일까. 결국 몇 글자라도 읋조리며 쓰는 것이 작가인 것을 왜 쓰지를 못하는가. 노트북도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유를 생각해 보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넘치는데 왜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가.
꾸준한 운동이 근력을 키우는 것처럼 매일의 글쓰기가 글력을 키울 텐데 용작가 그대는 왜 움직이지 않는가.
소설을 쓰겠다며 황당함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브런치북 소개글을 써놓고 소설은 왜 멈춰있는가.
새벽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
첫째, 일이 많긴 많다.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무량이란 것이 있다.
지난해 봄부터 출간을 목표로 글쓰기와 투고, 계약 후 완고를 향해 달려왔고 일도 세 가지를 병행했다.
올해는 특히 많이 지쳤다. 그중에 독서 수업을 했던 것은 참 좋은 경험이고 천운이었다. 책으로 둘러 쌓인 환경에서 오로지 고전 문학과 글쓰기만 할 수 있다니, 마치 세인트 존스 대학의 튜터가 된 마냥 기쁜 날들이었다.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둘째, 필사를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흐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새벽에 일어나 필사, 확언노트, 모닝페이지, 감사일기, 다이어리를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명상의 시간과 강의 듣는 시간이 되고 이후엔 아침 식사를 준비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오전엔 또 출근을 하니 이거 원 차분하게 글 쓸 시간이 필요한데 요즘 아이들 말로 정말 '에바'다. 새벽 시간을 갖고 싶었고, 남편과도 같은 시간에 이야기라도 나누며(사실 이야기 없이 각자 스마트폰 삼매경이지만) 잠이 드는 시간을 갖고 싶기에 일찍 자려고 한 것도 있다. 늦게 자지 말고 밤엔 같이 자고,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면 어떻겠냐고 말하던 남편은 이제 새벽에 혼자 거실로 가니 서운하다고 한다. 정말 아우! 어쩌라고 저쩌라고 돼지 먹고 살찌라고.
셋째, 소설이 쓰고 싶다.
무엇이 문제냐고? 소설 쓰기가 어렵다. 수업을 기웃거린다. 수업료 지불이 망설여진다.(요즘 나름 돈 공부 중이다),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면 들수록 무언가에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움이 느껴진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할 것이 많다는 걸 깨닫는 학생처럼 미궁 속이다. 평소 생각답게 거지같이 시작하자 외쳐봐도 이렇게 각 잡고 앉아있기가 쉽지 않다.
다섯째, 에세이도 쓰고 싶다.
이 마음이 드는 순간 더욱더 정확히 알게 된다. 아하, 글솜씨가 참... 갈 길이 멀구나.
뭔가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진 것도 같고, 문장 수집만 하다가 끝나는 것도 같고. 쇼츠를 봐서 그런가 집중이 안 되는 것도 같고, 같고, 같고.
발견한 한 가지 해결책.
일단 쓰자.
지금 오랜만에 브런치에 돌아와 글을 쓰니 참 좋다.
정말 귀중한 시간이 생겼다. 그것도 무려 카페에서. 학원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첫날이라 둘째는 나에게 동행을 제안했고 난 흔쾌히 허락했다. 왜냐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며 기다리면 되니까. 시스템 속에 들어가면 굴러가게 되니까. 카공족들과 작가들의 성지인 카페. 무수한 쿠폰으로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그 시스템 속에 있는 지금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다. 필사도 좋고 여러 가지 기록도 좋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어떤 생각들을 정리할 곳으로 브런치가 제격이다. 공개되는 글이라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지만 글쓰기 친정이자 베이스캠프인 브런치에서 일단 시작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내향적인 관종이니 사실 글 발행은 기쁜 행위 중 하나이다.
독서에세이에 쓸 책도 챙겨 왔다. 늘 가지고 다니긴 했다.
<화씨 451>
독서 모임 발제 도서인 이 책을 혼자 감동에 감동을 먹고 인덱스를 사정없이 붙이고 줄을 쫙쫙 그어가며 읽었다. 역시나 책이 주제인 글은 내 취향이다.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도 그렇고 <런던의 마지막 서점>이 그렇다. 이러고 보니 다 서점이네. 그래. 오늘은 꼭 완성하자 마음먹은 아침. 좋아하는 작가인 문지혁 작가의 칼럼에서 발견한견 운명인가 필연인가 작가님도 <화씨 451>을 주제로 칼럼을 쓴 것. 어쩔 수가 없다. 문지혁 작가는 역시 나의 최애 작가인 것으로 또 한 번 판명 났다. 쾅쾅쾅.
이제 쓰자, 정말 쓰자.
노트북도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말차라테 원샷했으니 정말 글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