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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노트

by 황인경

큰 불이 일어나

사람과 동물과 나무가 죽어나간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며

죄의식도 없이

테이스팅 노트를 읽어내린다

아득히 먼 곳에서 온 원두가

플로랄한 향미와

풍부한 바디감을 머금고 있구나

고마워 에티오피아

고마워 르완다

거기 숲은 어때 오늘 노동은 어땠어

우리 쪽 숲은 불타고 있다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것들이

밤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열풍이 나무를 부러뜨리고 있어

로스팅한 원두를 분쇄하는 동안

길 위엔 사람들이 버티고 있어

미친 왕을 끌어내리려고

서로 부둥키고 있어

나는 아득히 먼 나라의

나는 아득히 먼 이웃 도시의

나는 아득히 먼 옆 동네의

무지와 나태와 교만의 블렌드인 거야

구정물로 휘갈긴 테이스팅 노트인 거야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