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이 일어나
사람과 동물과 나무가 죽어나간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며
죄의식도 없이
테이스팅 노트를 읽어내린다
아득히 먼 곳에서 온 원두가
플로랄한 향미와
풍부한 바디감을 머금고 있구나
고마워 에티오피아
고마워 르완다
거기 숲은 어때 오늘 노동은 어땠어
우리 쪽 숲은 불타고 있다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것들이
밤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열풍이 나무를 부러뜨리고 있어
로스팅한 원두를 분쇄하는 동안
길 위엔 사람들이 버티고 있어
미친 왕을 끌어내리려고
서로 부둥키고 있어
나는 아득히 먼 나라의
나는 아득히 먼 이웃 도시의
나는 아득히 먼 옆 동네의
무지와 나태와 교만의 블렌드인 거야
구정물로 휘갈긴 테이스팅 노트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