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걸음, 글의 속도, 분량, 호흡

by 비린 다슬기

나는 이곳에서 묘사에 관한 이야기나, 서술, 대사를 적는 법을 가르치진 않을 것이다.

내가 가르칠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영역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체의 영역은 자신만의 스펙트럼이다. 그러니 배우거나 베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문체를 잡아가는 것이 좋다.

이전에 말하였듯, 자신의 글에 특색을 도드라지게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체의 영역인 것에도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건 있다.

제목대로, 글의 속도, 분량, 호흡에 관한 것이다.


영화와 글의 차이점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언제나 잊으면 안 된다.

영화는 시나리오나 대사 외에도 관객의 흡인력을 이어나갈 수단이 사방에 널려있다.

흔히 말하는 연출이라는 것들이다.

그럼 글을 쓰는 우리에겐 저런 효과를 누릴 방법이 아예 없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해줄 것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화에서 배경음악이나 시각적 효과를 통해 관객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것이 속도.

극적인 상황을 더욱 몰입감 있게, 그러면서도 다음 장을 위해 손을 떼지 않도록 하는 게 분량.

그리고 동일시가 아니더라도 여러 장치로 쓰일 호흡까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나는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묘사를 구구절절 적는 것보다, 이러한 장치들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쓰는 입장에서 재밌기 때문이지, 사실 읽는 사람은 예쁜 문장이 있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니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좋은 문장에 이를 적용할 방법을 떠올리길 바란다.


어쨌거나, 이런 장치들이 효과적인 이유는 흡인력 때문이다.

좋은 문장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러한 장치들은 글 그 자체에 빠져들게 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의외로 글과 많은 작용을 나누지 않는다.

읽는 것, 상상하는 것, 그리고 호흡이 같아지는 것뿐이다.

대개는 상상하는 것에서 글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지만, 호흡이 같아지는 것으로도 충분히 글 그 자체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쓰이는 첫 번째 장치가 바로 글의 속도다.

속도라고 하면 대개 짧은 문장으로 시선이 내려가는 속도, 라고만 생각할 텐데 반만 맞았다고 봐야 한다.

잘 조절된 글의 속도는, 문장이 길더라도 빠르게 읽어지게 된다.

글의 상황 자체가 긴 문장을 빠르게 읽도록 만드는 것이다.


긴박한 시나리오에서 앞뒤가 이어지는 문장을 계속해서 적으면 이러한 경우가 많다.

추격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글을 못 적는 사람이 적는 추격 장면은 너무나도 지루하다. 호흡이 늘어지고, 그저 상황을 늘어놓는 것만으로 보이며, 전혀 긴박함이 없다.

이것이 속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실력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겠고.


그리고 이와 반대로 속도를 일부러 낮추었으면 하는 상황도 생길 것이다.

포근함, 안정감, 그리고 행복 같은 긍정적 감정일 수도 있고, 혹은 위험한 상황에 정반대된 속도를 내어주며 불쾌한 감각을 내어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는 글을 읽다 보면 손에 익기 마련인데,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적어봐라.

매번 말하지만, 결국 글을 일단 쓰는 것의 연속이다.

내가 당장 글에 이런 장면을 써야 하는데, 만족스럽지 않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다시 적어라.

긴박함은, 중요한 순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은 그저 벌어지고 있다고만 생각한다면 그 글을 읽는 흥미가 순식간에 떨어지게 된다.

몰입이 끊어진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좋은 장면을 적으라고는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만족스러운, 하다못해 ‘뭐, 이 정도면 됐나.’라고 넘겨짚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원하는 의도에 맞게 읽도록 우리가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코 독자는 작가가 원하는 의도로 읽으려 여러 가지 노력해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러니 좋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해보도록 하자.


다음은 분량이다.

출간한 책들도 의외로 자주 끊는 책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팀 보울러’ 또한 글을 자주 끊으며 적는데,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글을 더욱 내려놓지 못하도록 한다.

하나의 사건이 끝날 때, 혹은 시작할 때, 혹은 시작할 것을 암시한 때에 글을 깔끔하게 끝내두는 것이다.

다음 장에 대한 기대감을 주어, 다음 장을 펼치는 것 자체를 즐거운 경험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분량은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상황을 고의로 끊어 다른 상황으로 환기해줄 수도 있고, 때로는 끊어주는 것만으로 읽는 데에 더 편안한 경험을 주기도 한다.

특히 소설로서 글을 내고 싶은 사람들은, 최근 웹소설이 회차별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 분량을 잘 끊어주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분량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주의점을 좀 말해주고자 한다.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분량 개념 자체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분량은 무작정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스낵컬쳐니 짧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한 템포에 여러 사건을 묶어서 분량을 길게 하는 건, 독자 입장에서 내려놓을 때를 찾지 못하는 지치는 글일 뿐이다.

너무 짧은 글이면 그만큼 담겼어야 하는 것들이 빠지게 된 거니 올바른 글의 형태라고 하기에도 묘하니까.


마지막으로 호흡이다. 내가 가장 사용하길 좋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우린 언제나 아름다운 문장만을 머리로 떠올리지 않는다. 매번 전율적인 감각을 살결로 느끼지 않는다.

따져보면 우리는 하찮은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일이 더욱 많다.

즉, 동일시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문장을 끊거나, 늘이거나, 특이하게 적어서 말이다.


나는 성장 소설을 적고 있는 만큼, 동일시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주인공에게 몰입하지 않는 투사 작품도 좋아한다.

그런 입장에서 주인공과의 거리감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이 호흡이다.


글을 읽는데, 묘사가 잘 갖추어져 있는 작품에서 독백이나 대화 짧고 자주 끊는 형태로 나오면 대개는 내 목소리로 읽게 되지 않는다.

대사는 최대한 구어에 맞추어져 있고,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을 끊어주면 독자는 화자와 호흡을 맞출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반대로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느슨하며 가벼운 문장들, 그러면서도 친숙한 이야기들을 적으면 내 목소리로 듣기에 간편하다.


호흡을 관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쉼표를 넣거나, 끝나지 않은 문장에 아예 온점을 넣거나, 어순을 비틀 거나, 같은 문자를 반복하는 것 따위로 이루어낼 수 있다.

이를 이용하여 속도를 올리는 방법도 있다. 사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나, 주의점은 있다.


자주 끊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글을 보기에 불편하다. 반대로 문장이 쉼 없이 길어지면, 호흡을 맞추는 게 아니라 길어지게 되며 오히려 끊긴다.

호흡은, 실제로 사람이 말하는 양만큼 읽는 사람도 있고, 대개는 그거보다 약간만 더 읽는 것 같았다.

전에도 말했듯, 너무 길어도 별로고 너무 짧아도 별로다.


마라톤을 뛰는데 5분마다 휴식처가 있는 것과 결승점 전에만 휴식처가 있는 것, 둘 다 결국 지치기 마련이다.


잊지 말자. 갑은 독자다.


요약해보도록 하겠다.


글을 빛나게 하는 장치가, 무조건 드러나는 형식은 아니다. 오히려 은은하게 작품을 빛내주는 장치들이 더 많이 있다.

글의 속도는 독자가 이 상황을 어떤 속도감으로 받아들이길 원하는지 인지하고 자신이 직접 조절하는 것이다.

분량은, 극적인 연출이나 자칫 생길 피로, 혹은 따분함을 환기하는 데에 주로 쓰인다.

좋은 필력으로 길게 적은 글도 좋지만, 좋은 필력이라면 적당한 분량으로 여러 번 끊어줘도 충분히 보기에 좋다.

호흡은 말 그대로 문장 자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이다. 어떤 호흡으로 독자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맞추어 나갈지 정해두자.

뭐든 적당히다. 너무 욕심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어느덧 이야기를 적는 법의 끝이 다가온다.


그럼 오늘도 모두 건필하길 빌며, 여기서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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