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가지로 사는 방법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5장 5절~12절-
열매를 맺는 나무 중 으뜸은 포도나무다. 가늘고 여린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를 보며 가지가 부러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로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는 성경 구절은 자주 들었고 그리 어려운 말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생명의 근원이고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꼭 붙어서 괴롭고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의 가지로 사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하는 걸까? 예배에 꼬박꼬박 참여하여 진정한 맘으로 주님께 예배드리고 늘 기도하고, 매일 말씀을 읽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을 일상화하는 것이라고는 누구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여기고 의지하고 경외하며 사는 자녀의 삶이니까.
이제껏 5절 말씀에서 멈췄다면, 엊그제 예배에서는 12절까지 쭉 이어지며 말씀의 맥이 집히는 나름의 깨달음이 왔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가지로 붙어있는 다는 것은 결국,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구나. 주님의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로, 이것이다.
성경을 딱 두글자로 줄이면? 바로 '사랑'이라고 많은 사람은 말한다. 요즘 심취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수호천사,수호신, 정령, 천사 등으로 불리는 스스로 있는 존재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주는 명령이자 간곡한 부탁 또한 '사랑하라'이다. 사랑은 신앙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고 궁극적 선인 것은 확실하다.
말씀에서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믿음이고 구원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 내 삶의 주도권을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고 사랑하는 실천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웃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따라오는 구분은 바로 나의 가까운 이웃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이웃인 사람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죽을 때까지 애증의 변곡점을 지나며 그래도..그럼에도 불구하고...같이 걸어가야 할 가족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임에도 '좀만 있다가요, 그 사람은 비껴가고 싶어요. 아마 언젠가는 인정하겠지요.'하며 미뤄뒀던 그 사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어서인가. 이 말씀이 곧이곧대로 와 닿았다. 그러면서 확장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치료사'로 만나고 있는 15명의 아이들..이들은 내게 이웃이다. 학생? 내담자? 환자? 이전에 내 이웃이다. 2024년 8월부터 내게 가까이 온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고 깜찍하고 소중한 아이들은 내게 사랑하라고 주어진 내 이웃이었다. 진정 치료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이들 각자에 대한 최선의 지혜를 구하며 기도로 만나야 할 내 소중한 이웃이다.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 갖춘 이것저것들(경험, 이론, 자격증 등)을 활용하여 주님께 쓰임받는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오는 칭찬이나 비난 또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며 내가 더 챙기고 노력해야 할 작은 팁에 불과하다. 나는 온전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할 대상이 더 늘은 것이다. 지금의 내 시간과 공부와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아이들이 어쩌면 지금은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웃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