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무너졌다.
ㅣ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내는 용기, 할 수 없는 것 은 포기하는 지혜ㅣ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 건 지난 10월부터였다. 난 서서히 초초해졌고, 하루 종일 긴장했으며, 말꼬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당시 복용했던 약은 밀타정 7.5mg, 알프람정 0.5mg, 쿠에타핀정 12.5g, 아티반정 1mg이었다.
2005년부터 우울증 약을 먹었지만 2018년 의사 상의 없이 약을 내 임으로 중단했다가 바닥을 치고 육아 휴직을 1년을 하며 나름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2018년부터 2022년 5년을 견디게 해 주었으니 매일 보약이다 생각하고 쭉 먹고 있던 약이다.
중간중간 약을 줄이는 시도를 했지만, 팀장 역할을 맡아서 줄이는 시도는 접었다. 약을 먹고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자 생각하고 출퇴근 시 명상 음악, 긍정 확언, 법륜 스님 강연(직장생활), 기타 책들을 읽으며 다잡고 다 잡았다. 그런데 마음이란 녀석이 도통 안 잡혔다. 심리상담을 해도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 대기업이 팀장을 아무나 시키지는 않는다. 평가도 좋은데 왜 그러냐? 그러곤, 어쩌다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를 물으면 눈물부터 흘리고… 아마도 회사에서 가장 많이 우는 사람이 나인 것 같다.
결국 팀장 포기 1주일 전 다니던 정신과 병원을 찾아 또 울었다. 원장님께 힘들다고 마음을 다스리려 했는데 안된다고 불안하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또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이젠 애들이 있어서 죽지는 못하겠고 퇴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왜 저번 진료 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신다. 꼭 고쳐 주겠다고. 하셨다. 현명하니까 잘 지나갈 거라고 믿으라 하신다.
그리곤 약을 바꿨다 밀타정 15mg, 알프람정 0.5mg, 아티반정 1mg, 에스벤서방정 50mg, 삼디아제팜정 2mg, 페로스핀정 10mg으로 바꾸고 지금 12차 복용 중이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80세가 다되어 가시는데 정말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죽겠다며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오지랖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원… 심지어 이 와중에 집 골목에 있는 붕어빵 파시는 아주머니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곳에서 붕어빵 장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란 사람…
아무튼 약을 바꾸고 결심했다. 리더의 첫 번째 조건인 멘탈관리인데, 첫 번째 조건이 충족이 안 되는 사람이 리더를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정적인 현재의 상태가 구성원들한테 전염되는 게 싫었고, 내가 할 수 없어서 포기하는 것들이 사실 조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생각을 크게 확장하지 못하는 내 그릇에 한계를 느꼈다. 내가 조직의 성장의 병목인 게 문제였다.
퇴사를 해야겠다. 다른 방법이 없다. 남편도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시어머니도, 아이들도 내가 회사 생활을 해야 한다 하는데… 나는 더 이상 민폐에 비겁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가족들 모두 반대하니 퇴사하고 출근 가방을 메고 일용직 알바 자리를 구해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 당분간 퇴사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나름 작전을 세우고 평일에는 오전 8시 반부터 18시 반까지 회의로 가득 찬 상사 일정을 보고 약을 바꾸고 5일 차 금요일 한가한 오전 면담요청을 했다.
상사는 오늘 정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셨다. (그간 힘들다고 여러 번 사석에서 이야기했던지라… 예상하셨단다.) 내가 잘하고 있고, 현재 우리 조직 내에서 대체 인원이 없고, 내 힘듦을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뭐 때문에 힘든지 고민들 나눠 줬으면 좋겠다고도 몇 번 이야기하셨다. (내 고민은 나의 무능이고, 긴장하고, 초초하니 메일 한통 보내는 것도 30분 ~ 1시간이 걸리고, 구성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일이 챙길 수도 피드팩도 할 수 없고… 주말도 갈아 넣고 해도 일단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생산성 있게 지식이 머릿속에 차지 않습니다. 담당님처럼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똑똑하고, 이해도 빠르고, 기억력도 좋아야 하는데 전 안돼요… 전 자격 미달입니다라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지만… 접어두고..)
다짜고짜 ”퇴사하겠습니다. “ 했더니, 왜 여러 가지 옵션이 있는데 극단적인 생각을 하냐며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주신다. 휴가, 휴직, 팀이동 등등…. 그러면서 덛붙이는 말씀이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신다.
아 내가 뭐라고 또 나에게 기회를 주는 걸까?
정말 이 회사는 특별하다! 나도 모르겠다 왜 자꾸 나에게 기회를 주는지를…
10년 전 주말 맘으로 아이들 육아 및 시어머니 수술로 퇴사를 한다고 하니 전 팀장님이 퇴직서를 빨간펜으로 고쳐가며 이렇게 쓰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으니 최대한 어쩔 수 없어서 퇴사한다고 써야 한다며 고척 주질 않나, 마지막 퇴직 인사로 메일을 보냈더니 2만 5천 명이 넘는 대기업에서 CEO가 내 퇴직 메일을 보고 출장 중에 연락을 주셔서 어려운 결정 했다고 가족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다가 원한다면 집 근처 계열사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질 않나… 내가 이번에도 퇴사하겠다 하니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휴가를 다녀 오란다. 상사는 전쟁터에서 내가 보기에도 피를 철철 흘리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패잔병 나를 왜 끌고 가주는가?
20년을 우울증과 출산으로 업무가 계속 바뀌어서 전문성이라고는 없는 나를, 20년을 다녀도 매번 신입사원인 나를 보듬어 주는 회사가 고맙지만, 그 고마움에 부응하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위태위태하고, 좌충우돌하는 나 회사생활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쓸모를 내 스스로 찾아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
약의 효과가 나려면 2주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다음 주면 팀원들과 상사들과 마주하며 쿨하게 나 포기라는 빠른 의사 결정을 했어요 할 수 있을까?
팀원 중 한 명은 내가 포기 한걸 알고 전화가 왔다. “그 자리는 누가 와도 힘들었을 자리였어요!, 팀장님이니까 팀원들 하나로 만든 거고요. 각자 필요에 의해 모였으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황금휴가니 사람들 많은 곳도 가고, 요가도 하고, 집에 만 있지 말고 나갔다 와요” 한다.
이번엔 또 밑에 후배가 끌어준다… 이상한 회사다… 대기업의 사원은 부품이라던데… 자리가 있다 사라져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돌아간다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팀에 새로운 업무에 내가 할 수 있었던 리더십은 동막골의 촌장이 했던 방법 밖에 없는데 말이지…
동막골에 우연히 들어와 지내는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 사람들을 아우르며 마을을 이끌어가는 촌장에게 묻는다.
“촌장님,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통솔하는 영도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멀리 하늘을 응시하던 촌장이 이내 입을 연다
“뭘 많이 먹여야지….”
흠… 회사의 리더십은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다. 전략과 전술, 말발과 글빨 머리가 좋아야 한다. 난 그걸 가지지 못했다. 리더가 중요하다. 아무리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추구하고, 팀원들의 자발성을 동력으로 MZ세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1년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무너졌다.
하지만 휴가 4일 차 세상도 안 무너졌고, 회사도 망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내적 갈등만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
중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에게 이번에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친구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도피를 다 지켜봤다.
주변 사람 모두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니, 여자가 지금 어디 가서 그 돈을 버니, 그냥 다녀,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살아, 그리고 팀장을 줬는데도 못주어 먹니, 다들 하고 싶어서 난리인데 넌 왜 그럴 스스로 내려놓니라는 말들을 하지만, 이 친구는 나랑 조직 생활은 안 맞는 것 같다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만두라던 유일한 친구다.
그렇지만 내 현실적인 상황을 너무도 잘 알기에 지켜보는 본인도 안타깝다고…
넌 월세 잘 나오는 건물이야. 건물을 갑자기 팔겠다는데 남편이, 시어머니가, 애들이 말리는 건 당연한 거지…
세상에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다 비겁해… 너만 비겁하다 자책하지 마…
일단 아직 여기저기 네가 써먹을 곳이 있어서 회사에서 안 버린 것이니 또 바꿔 보면서 일해봐…
44살 우리 인생 너무 빨리 감기로 돌려 버리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할 자.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마 네가 있어야 가족도, 회사도, 나도 있는 거니…
회사에서 Job이 주어지면 못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게 살아남는 법인 것을… 난 또 도망치고 할 수 없다 했는데 아직 남아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밀어붙이는 용기와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했다 생각하고 그게 또 어찌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일 것이라 믿어 보련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너무 자책 말고, 그들이 기대한 것을 다 채워줘야 하는 의무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또 하루 주문을 걸며 마음 비우기 연습을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