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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Oct 09. 2022

해외여행 중 한글로 글을 쓰고 있으면

여러분은 여행을 하다 글을 쓰고 싶을 때 어디에 자리를 잡으시나요? 숙소 침대에 앉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시나요. 아니면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벗 삼으시나요. 저는 주변에 타인이 어슬렁거리는 널찍한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몰두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개방적인 장소를 주로 이용합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밖에서 한글로 글을 쓰고 있으면 참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저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으면 주변에서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게 바로 ‘키보드’입니다. 영어, 스페인어 등 알파벳 기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자판에 알파벳만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노트북은 한글과 알파벳이 공존하고 있지요. 외국인들 눈에는 그게 참 신기한가 봅니다. 조그마한 키 한 개에 전혀 다르게 생긴 글자가 같이 붙어 있으니 말이지요. 더군다나 쌍자음이 새겨진 키에는 3개의 문자, 예를 들어 ‘ㄱ’ 키에 ㄱ,ㄲ, R가 빼곡히 채워져 있는 걸 보고 놀랍니다. 한국 사람 눈에는 알파벳만 적혀 있는 외국 키보드가 다소 심심해 보여 이상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제가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조차 없는 걸 질문하기도 합니다. ‘A’와 ‘ㅁ’이 같은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선 저한테 이렇게 묻습니다. ‘ㅁ’이 ‘A’와 같은 소리를 내는 문자냐고요. 저는 처음에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참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듣다 보니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특정한 규칙에 맞춰 글자가 붙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영 엉뚱하지만은 않게 들렸습니다. 이젠 당황하지 않습니다. 한글 배열은 알파벳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그들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그저 자주 쓰는 문자가 중앙 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럼 보통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A 소리를 내는 건 뭐야? 어디에 있어?” 이렇게 된 이상 본격 한글 강의에 돌입합니다. 자음은 자판 왼쪽에 모여있고, 모음은 오른편에 있다. A는 ‘ㅏ’고, K는 ‘ㅋ’이며……. 그들은 아마 제가 처음 아랍어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끼나 봅니다. 제 모니터 워드 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곧 한껏 기대 찬 눈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안지’, ‘브렌다’ 등 우리말로도 음절이 딱딱 떨어져 쉽게 옮겨 적을 수 있는 이름이면 다행입니다. 알파벳과 연결해서 왜 한글로 이렇게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하기도 쉽습니다. 문제는 우리말로 정확히 일치되는 음이 없는 이름입니다. 예를 들면 Victoria를 ‘빅토리아’로, Angelica를 ‘앙헬리카’로 옮기면서 한글은 V, B를 R, L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줘야 합니다. ‘페르난도(Fernando)’, ‘마르(Mar)’처럼 한국식 발음으로 음절을 늘려 적어야 하는 이름은 어쩔 수 없이 저도 말끝을 얼버무립니다. 일반인인 제가 그 이유를 외국인에게 이해시킬 만큼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제게 무슨 글을 쓰냐, 작가냐고 물으면 저는 대충 ‘블로그’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어쩔 땐 허풍을 떨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바로 한국의 J.K. 롤링이다’라며 해리포터 못지않은 두꺼운 시리즈물을 건네는 발칙한 상상을 하지요. ‘어차피 한국말로 써져 있으니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할 텐데 뭐’라는 심정으로 ‘한국에서 알아주는 작가다’라고 말하는 등 온갖 상황을 혼자 머릿속에 그려보다 고개를 내젓곤 합니다. 현실에선 그저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이라며 다소 초라한 제 브런치 페이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다 제 구독자 수를 넌지시 가리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읽어준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웬만한 일반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못 미치는 숫자여서 듣는 사람들 반응이 각양각색이긴 합니다.






종이에 펜으로 눌러쓰는 일기라도 방안을 벗어나서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도 여행을 하다 공원에서, 유명 관광지에서, 혹은 바에서 그때 느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어차피 해외에선 다른 사람들이 내용을 훔쳐보지도 못합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열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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