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
질문이 생경했다. 몸이 뻣뻣하게 굴었다. 익숙지 않은 말에 들려왔던 다른 목소리들이 귀로 갔다가 쏟아졌다. 그런 대화가 시작되던 시절이 기억할 일 없도록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 뭐 해?” 문고리가 닫히듯이 목이 막혔다. 얼마 안 가 목소리를 되찾아 건너편에 답을 주었으나 남의 의문이 의문이 되어 맴돌았다. 언제 적 질문인가, 누가 그리고 누구에게.
잘도 조잘대던 시절에는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물었다. 뭐하냐 물으면 답이 와서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물을 일도 물음 받는 일도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뭐 해’가 저 ‘뭐 해’가 되고 사람 구실로 무엇을 하느냐가 의미의 종착지처럼 되면서 해당 질문은 관계에서 무심하거나 조심스레 여겨질 만큼 사라졌다. 무엇이든 본론만 전달하고 인사치레조차 안 해도 되는 것까지 많은 이들이 알려주듯 하여 점차 어색해지지 않았다. 대답은 진실이 아니어도 됐다. 진실이든 아니든 결론은 대답한 바와 그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의 회로가 고려되지 않는,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는 물은 자들의 몫이다. 묻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거나 대화의 수단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묻는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이 떠올라 취하는 연락, 던지는 물음. 곧 대답의 유무로 갈림길이 생긴다. 질문이 돌아와도 대화가 진전되고, 대답이 와도 진전은 가능하다. 질문자는 대개 상대방의 관심을 바라고 있다. 순간들의 관심이 이어져 자신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본론에 이르기 위한 전 단계는 상대의 상황과 시간에 대한 배려가 담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걸 떠나 응답자가 그 욕망의 실현을 도와준다면 질문자는 깔아준 방석에 펑퍼짐하게 눌러 앉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깔아주면 상대방의 시간을 헤아린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움큼의 이야깃거리를 풀고 싶어 원 질문자는 성격과 성향에 따라 표는 달리해도 내비치기는 시작한다. 기분에, 감정에 따라 사실을 넘어서거나 축소시키기도 한다. 발화자가 어떤 상태이든 청자는 듣거나 듣지 않거나, 둘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둘은 모두 같은 시간을 쓴다. 듣는 이가 가로막거나 말하는 이가 꿋꿋하게 이어가지 않는 이상, 대화는 각기 가치관을 넘어섰는지의 여부는 뒤로 한 채 대개 일정과 상황 등을 매개로 끝난다.
무너지는 객체가 쏟아내는 말들이 귀를 채워 넘어섰다. 시계를 보며 공간을 베어서라도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도 그네에게 마지막 남은 한 켠일까봐 혹은 한 켠인 적이 많아서 버텼다. 점점 목소리들을 참을 수가 없어 모든 스피커를 껐다. 이야기들을 참을 수가 없어서 순간순간 책을 덮었다. 장면들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일어섰다. 혼자이기를 인정하지 못하는지, 혼자이지 않았기에 그 혼자가 되는 과정을 못 버티고 남에게 보여주는지. 결국에 악을 질러가며 그만 얘기하라는 말을 해버린 날. 모두에게 할 말이 없다고 느꼈던 과거가 겹쳐 결국 ‘뭐 해’라는, 어쩌면 단순히 애정 어린 말을 단초로 삼고 경계 어린 경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되어버린 것인가 하며.
그 이상한 질문을 다시 듣는다.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시답잖은 이야기로 치고 빠진다. ‘뭐 해’, ‘뭐 할 거야?’ 대화에 회전문을 세우는 이들이 있다. 가벼운 대화도 관계 유지에 좋지만 에너지가 나가떨어질 것만 같은 때에 무엇일지 알지 못할 질문을, 어쩌면 사적일 질문을 그렇게. 누군가는 과감하다. 같이 있는 기분을 원한다고. 거절당할까 언젠가부터 하지 못 했던 말을, 타인은 쉬이 시작한다. 욕망을 들어내고, 드러낸다.
어느 누가, 왜, 감히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도 무슨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