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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이 최고

14주차- 침묵

by 홍그리

정보화시대에는 어떤 어플을 열든 몇 초마다 무수한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24시간 전 세계에서 인터넷 하나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 지구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시간으로 주가에 반영돼 주가가 폭등하거나 폭락하고, 정보가 많은 만큼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촘촘한 연결망을 만든다. 이럴수록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되는 법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가진 것이 많을수록 서로에게 더 의지한다. 후진국은 오히려 선진국보다 세계각국에서 일어나는 영향에 큰 관심이 없다. 왜냐. 선진국은 가진 것을 더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자국이 가지지 않을 걸 더 얻으려 노력하고, 후진국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의존할 이유가 없다. 한 예시로, 얼마 전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을 봐도 중국과 조금만 틀어지자 트럼프대통령은 호주와 희토류 협약을 체결하고, 중국은 아르헨티나로부터 대두를 수입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또 다른 플랜 B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플랜 B를 다양하게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 다양한 국가와 컨텍을 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현대사회에서 기인하는 가장 분명한 명제 하나는 가지면 가질수록 본인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못 가지면 못 가질수록 더 시장에서 소외되며, 나날이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늘어날수록 이 격차는 따라오지 못할 만큼 심해진다. 그래서 꼭 자산의 가치를 떠나 조금이라도 어떤 이해관계에서 포모현상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남들보다 더 특출 난 무언가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주변 사람이 본인을 찾는다. 돈이 없으면, 정보가 많거나, 똑똑하기라도 해야 한다. 최소한 뭔가 내가 타인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요건 하나 이상은 있어야 그것이 관계든, 기회든, 뭔가 나에게 세상이 관심을 가져줄 기회가 온다고 본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혹은 지금 가진 것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조심하는 수단은 '말'이다. 어떤 말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기도 하니까. 트럼프 말 한마디, 트윗하나만 봐라. 그 한 줄에 전 세계의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걸 보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거다. 그가 만약 노망이 나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면 그것도 신뢰를 잃어 아무도 그의 말을 미래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딱 필요한 말만 한다. 지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대통령이 트럼프가 좋아할 만한 왕관을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좋아할 말만 준비하고, 서로 예의를 갖추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잘 가꾸어진 말 하나로 건강한 비즈니스 관계를 쌓아가기 위함이다. 너도 무언가를 얻고 나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고. 서로 가지지 않은 걸 얻어가면서 가진 자들이 더 촘촘히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자본주의의 논리.


이제 전 세계나 한 국가에서 더 촘촘히 들어가 한 개인의 삶을 보자. A가 있다. A는 어릴 적엔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은 오래된 초등학교 동창이나 친구들만 있었다. 5년 뒤, 대학을 졸업하고 지인들이 많이 생겼다. A는 성격이 쾌활하고 재밌어서 소위 말해 인싸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 여기서 또 5년 뒤, 나이가한 살 한 살 먹을수록 A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고 현재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다고 하자.

그럼 주변에 사람은 더 많겠지. 그가 지금 잘 됐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따라온다. 누군가는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그런 똥파리들도 있을 수 있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뭔가 보험팔이라던가, 차팔이, 강의팔이처럼 본인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A는 성격이 좋아 거절도 잘 못하고 이리저리 말한 게 있어 다 들어주고, 제대로 된 인연을 쌓아가려 술을 한잔하기도 뭔가 노력은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본인도 실언을 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받기도 부지기수다. 나이가 더 많이 먹을수록 가지는 건 많아지는데, 가진 걸 잃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이를 지켜가야만 하는데 제대로 된 인연을 가지기가 쉽지 않아진다. 누군가는 A를 질투하고 시기해 곤경에 빠트리거나, 이상한 소문을 내기도 한다. 그게 믿었던 사람이라 A는 이미 상처를 한번 받은 적이 있다. 이 정보화시대에 아는 건 더 많아지고, 그로인해 인생을 살아갈 확실하고 보장된 강한 신념이 자리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같이 공유할 대상도, 같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사람도 없다. 말하면 꼰대라 잔소리듣는다. 그렇게 그는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꼭 필요할 말만 하고 상대가 기분 좋은 말을 하기로 한다. 내 속마음은 집에 와서 가면을 벗든말든 밖에서는 어떻게든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고, 나를 들어내지 않으려 한다. 내 속마음이 행동으로 절대 이어지지 않게 한다. 그냥 가만히 나만 알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상처 안 받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러니 상대방도똑같이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과거보다 문젯거리가 사라진다. 어쨌거나 말을 줄이니, 정작 재미는 없을지언정 구설수에 오르지도 않고, 더 스스로가 편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말을 적게 하면서 상대가 말한 의도를 한번 생각해보기도 한다. 일방향적인 건 없듯, 뭔가 틀어진 대화가 있었다면 내 입에서 나온 말도 어떤 원인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은 말을 줄이니, 조금 더 내 행동에서 문제가 줄어들고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본인을 발견한다.


집안 가족문제도 똑같다. 이건 내 얘기다. 임신한 아내가 있다. 이럴 때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의견자체를 내면 안 된다. 뭔가를 할 때에 가장 먼저 와이프의 의견을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토를 달지 않고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임신을 한 아내의 경우 호르몬의 변화, 환경의 변화 등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말을 하든 거슬릴 수 있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평소와 다르다.그래서 그냥 왕과 신하, 직장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처럼 정확히 '갑을관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관계를 악화시키는 실수나 개선할 노력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자체로 갑을관계로 받아들이면 된다. 부하가 상사에게,


"그런식으로 좀 말하지 말아달라. 기분 나쁘다“


신하가 왕에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방금 말씀하신 건 개소리인 것 같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면 싸울 일이 없다. 본인입장에서 말 자체를 하지 않는 것. 말을 줄이면 그 침묵하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상대가 말한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가정은 화목해진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늘어난다. 이로써 매순간 갈등이 일어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모두 내가 떠안고 해결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애초에 최대한 필요한 말만 하도록 한다. 그건 내 것을 더 소중히 지키기위한 가장 최소한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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