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 차- 깨달음
오래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십 년을 넘게 함께하며 평생우정을 약속한다. 그 친구가 힘들 땐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내가 도움받기도 한다. 든든하다. 친구가 취업을 못했거나, 현실적으로 나보다 힘든 위치에 있을 땐 내가 더 먼저 배려하고, 내가 하는 일이안 풀려 힘이 들 땐 그 친구가 집 앞까지 찾아와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우리 각자가 어떤 위치와 상황에 있든 서로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변함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로 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사이다. 관계는 무언가를 바라게 되면 재미없어진다. 그 원하는 무언가의 보상이 상대측으로부터 오지 않을 때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어지거든. 어떻게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내가 이득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그런 사이로 전락해 버린다. 그걸 알기에 서로 아무것도 바랄 게 없으면, 서로 힘든 얘기, 아쉬운 얘기, 만남의 그 시간 자체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 영원할 것 같은 관계는 아주 놀랍게도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다. 바로 나 자신이 피해를 볼 때다. 나 본인보다 중요한 관계는 절대 없거든. 내가 이 친구에게 돈을 천만 원 빌려줬다고 하자. 근데 이 친구가 돈을 제시간에 갚지 않는다. 심지어 갑질행세를 한다.
원래 돈이라는 게 빌릴 때에는 그렇게 애걸복걸하다가막상 빌려주고 나면 갑을관계가 바뀐다. 본인이 주고 싶을 때 주게 되기 때문에, 빌려준 사람은 어떻게든 그 돈을 받기 위해 상대의 기분이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돈을 받았든 , 안 받았든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믿었던 우리 특별한 관계가 이렇게 돈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거다.
꼭 돈문제뿐일까? 둘 중 한 사람이 취업을 했다고 가정하자. 대기업에 다니고 돈도 잘 번다. 근데 상대는 아직 취업준비생에 돈도 없고 결혼도 못했고 자리도 못 잡았다. 그러면 만나서 얘기를 할 때에 취업한 측에서 아무렇지 않게 한 안부얘기에도 발끈할 수 있다. 괜한 자격지심으로 본인을 낮게 본다거나, 우습게 본다고 오해를 사 그 관계는 서서히 불편해지고, 불편해지니까 더 이상 안 만나게 된다. 그 상대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 이 외에도 또 술자리를 갖다 술에 취해 실수로 말한마디 잘못해 틀어질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라 하더라도 서로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면서 멀어질 수도 있고, 지역이 달라 멀어질 수도 있고, 결혼과 출산으로 본인의 환경이 가정중심으로 바뀌어 신경쓸 겨를이 없어 자연스레 멀어질 수도 있다. 친구도 말이 좋아서 친구지, 나이 먹고 일상아 바빠지면 거의 일 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만남이 소원해지고, 연락을 왜 먼저 안 하냐의 먹먹한 생색과 함께 멀어진 건 이미 가정사실이나 ‘어쩔 수없이’ 유지해야 하는 관계에 도래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땐 영원할 것 같았는데’, ‘그땐 재밌었는데’, ‘우린 왜 이렇게 서로 변했을까’. 발생한 결과의 원인을 끊임없이 찾고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는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절대 그 책임의 대상은 ’나‘는아니라는 것.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굵어져 내가 가진 신념과 가치관을 바꿀 생각도, 그 친구에게 맞출 생각도 크게 없다. 내 인생에 얘가 없다 해서 크게 크리티컬 하진 않을 것 같다. 인연은 새로 또 찾아오겠지라고 자기합리화한다.
이게 아니라, 아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편하게 연락하고, 자주 만나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만나는 그런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가히 축복받은 거다.
누군가는 돈이 많다.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 상승장에 크게 배팅해 큰돈을 벌었다. 그때는 모든 게 행복했다. 가족과 맛있는 것도 먹고, 해외여행도 다녔으며, 사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사고, 집을 알아보고, 차도 알아본다. 매월 받는 이 안정적인 월급과 재테크에 성공한 이 돈만 있다면 나는 평생 노후준비는 다 끝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투자의 귀재라고 스스로 믿는다. 내가 배팅한 그 주식의 믿음과 신념은 수익률이 오를수록 더 확고해진다. 원래 매수보다 매도가 더 어려운 법. 그는 절대 팔지 않고 평생 가져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몇 달 뒤, 갑자기 경제위기가 온다. 주식이 폭락한다. 수익률이 100%였다가 50%로 바뀌는 그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그래도 플러스지 않냐고? 마이너스보다 더 기분 나쁘다. 어떻게 해서 내가
100%까지 올린 수익률인데. 그렇게 오를 거야, 오를 거야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다가 마이너스 계좌에서 결국 손절한다. 돈을 잃은 것이다. 돈이 있을 때는 좋았지, 없으니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주식을 안 하는 또 다른 이는 몇 년 동안 회사를 열심히다녔다. 그리고 꾸준히 예적금을 하며 의미 있는 자산을 만들었다. 근데 보이스피싱으로 한순간에 목돈을 날렸다. 모든 희망이 무너지며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삶이 전부 무너진 기분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온갖 부푼 희망을 안고 서울에 와 공부를 하거나, 취업을 한다.근데 나중에 이사를 가려고 보니 전세사기를 당했다.
반대로, 중소기업에 성실히 다니는 또 다른 이는 맨날 친구들 모임에만 가면 주눅이 든다. 누구는 월급 500만 원에, 성과급에, 빵빵한 복지에 막 자랑을 하는데 나는 그런 걸 회사생활을 하며 받아본 적이 없다. 근데 우연히 산 로또 1등에 당첨돼 걱정 없이 살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떵떵거리고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할 거라는 그 친구는 십 년 뒤 희망퇴직명단에 포함돼 직장을 나와 제2의 인생을 궁리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파도에 파고가 있는 것처럼 어쩔 땐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겪고, 건강하다면 다시 일어나 여유로운 삶도 다시 무조건 온다.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이처럼 하루 24시간 중 가장 본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관계, 직장, 돈에 영원한 건없다.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또 운이 좋아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손절했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올 수도, 가장 친한 누군가를 작은 실수로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갑자기 하루아침에 안정적이라 믿었던 직장에 잘릴 수도,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일자리가 더 나랑 잘 맞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잃었던 돈도 회복하고, 직장도 다시 재취업하고, 관계도 개선될 여지가 있겠지만 100% 장담할 수 없다.
자, 그러면 이렇게 움직이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결국 하루 24시간 중 내가 남는 건? 결국 가족뿐이다. 내 가족. 이 세상이 날 버려도, 진심으로 기쁜 어떤 일이 생기든,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있다는 것. 집에 돌아왔을 때 본인을 반겨줄 수 있는 사람과 내 아이가 있다는 것. 본인에게 최종적으로 남는 건 그것뿐이다. 오늘 돈 버는 것도, 주식을 하는 것도, 친구를 만나서 관계를 쌓고, 직장상사의 꾸짖음에 참는 것도, 어쩌면 다 가족이 우선시되기에 가능한 거고이 총체적 일상 모든 게 내 가족을 위한 일이다. 그래서가족은 본인과 곧 동일시된다.
우리가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만나는 건, 가족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결국 본인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