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을 때면 엄마와 동네 공원을 산책하곤 한다.
꽤 큰 공원이라 나무도 굉장히 많은데, 그 중 엄마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하나 있다.
그 나무가 감나무인 건 꽤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 나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정말 눈에 띄게 작았기 때문이다.
아직 자라고 있는 나무라고 생각해서 '아기 나무'라고 불러주었는데
일 년이 지나도 그 크기가 그대로인 것을 보고 아기가 아니고 원래 그 사이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단순히 그 나무가 작아서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무는 작지만 굉장히 단단해보였다.
키도 부피도 작지만 그 뿌리가 굉장히 단단하게, 곧게 서있는 것 같달까?
또 (의외로) 나뭇잎도 풍성하고, 왠지 모르게 당차 보이는 아우라까지 갖추고 있다.
나무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이는 게 조금 웃기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엄마 말이, 그 나무가 나같다는 거다.
아직 작지만 옆의 큰 나무들에 기 죽지 않고 꼿꼿이 서 있다고.
당시에 내 마음이 좀 어려웠어서 그런지, 그 말이 괜히 감동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어쨌든 그 후로 그 나무가 있는 길을 지날때면 꼭 한 번씩 들여다보곤 했다.
좀 더 자랐나? 아니면 잎이 더 많아졌나? 꽃이 피었나? 하면서.
최근에 오랜만에 엄마랑 산책을 하다가 그 나무를 찾아갔다.
옆의 나무들을 보니 감나무답게 나뭇잎 사이로 둥실둥실 감을 많이도 띄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작은 나무는 글쎄, 아무 열매가 없는 게 아닌가. 감은커녕, 아주 작은 열매도 없었다.
작아서 그런가봐.
아쉽지만 그러려니 하고 뒤를 돌아 가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 라이트를 키고 더 가까이 가봤다.
밤인데다가, 약간 내리막이 있어 쉽진 않았지만 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나뭇잎 사이로 아주 얌전하게 감 몇 알이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다른 큰 나무의 열매와 같은 크기의 감이었다.
너무 신나고, 신기하고 기특했다.
얘는 작아서, 아직 뭔가 부족해서 열매는 맺지 못하나봐. 나처럼.
이라고 생각할 뻔 했던 나에게,
작은 나무의 열매는 몽실몽실한 기쁨과 기대를 주었다.
작지만 그래서 더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 되고, 그 열매 맺음이 더 대단하고 귀하게 여겨진다는 위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