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러게 왜 그랬어]
전 노래를 들을 때 설렌다거나 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 아무리 멋진 사랑 노래라 할지라도 ‘우와 가사 쩐다’ 정도에서 마음이 멈추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러게 왜 그랬어>는 다릅니다. 정말 들을 때 마다 새롭게 설레어요. 비오는 날 밤, 걸친 것 없이 집에 돌아오니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혼을 내는 애인이 떠오릅니다. 낮에 싸운 후 서먹한데 집에서 마주치니 괜히 어색하니깐 애정을 담은 화를 내는 거죠.
‘왜 그러고 섰어? 들어와’ 이 부분도 미칩니다 진짜.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 맞은 강아지마냥 쭈굴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제게 ‘그냥 들어오기나 해 바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곤 내일 일 있다며 알아서 자라고 툭 내밷으며 화난 척 하는 게 마냥 귀엽습니다.
그러곤 약간의 화를 참으며 묻죠.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애인이 생각하는 것 만큼 힘들 게 아니었고, 단지 투정부리고 싶었던 거니까요. 그리고는 괜히 찔려 또 막말을 퍼붓습니다. ‘아니 내가 힘들다는 데 뭐!!’, ‘싫으면 헤어져!’ 그래놓고는 또 후회하죠.
둘의 언성이 높아졌다 다시 잦아졌을 때 즈음, 애인은 말해요. ‘왜 그러고 섰어? 일루 와...’ 쫄래쫄래 다가가면 포근하게 안아줍니다. ‘에휴.. 이렇게 안고 있으면 미친 듯이 좋은데.. 맨날 왜 그래? 그러지좀 마라 진짜..’ 와 진짜 이건 유죄입니다. 설레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정말 속상한건, 제가 이 노래 들어보면 정말 설렐 거라고 들려주면 다들 비웃는다는 거에요. 무슨 장기하 노래에 설레이냐, 그냥 노래가 좀 이상하다, 아저씨 목소리 밖에 안들린다.. 근데 진짜 아니거든요?!? 진짜 그 온도, 습도, 채도 완벽한 노래라니까요? 조금 더 이과적으로 표현 해 보자면, 비가 살짝 내리고 나서 영상 17도 정도로 약간 쌀쌀한 어느 날 밤 11시, 습도 30도 정도의 공기 속에서 100 럭스 정도의 은은한 현관 등만 켜져 있는.. 비에 젖은 아스팔트와 도로가 흙 내음이 섞인 향이 덮여있는.. 그런 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화 내고, 안아주는 그런 애인이 귀에 속삭인다고 생각하면 정말 설레이지 않나요?
이 노래를 들으면 항상 꿈을 꾸게 되는 것 같아요. 아, 저런 사람 만나고 싶다. 이런 꿈이요. 그냥 저 노래같은 사람과 어른의 연애를 좀 해보고 싶어요. 너무 유치한 사랑놀이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적당히 위로하는.. 그런 연애요. 뭐, 언젠가는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