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에 사장님이 나에게 'OO문서' 전체를 8월 중 리뷰하고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당시엔 8월 중에 하면 되니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고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8월 한 달 동안 미루고 고민하던 일을 지난 8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끝내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8월 중 마무리해야 했는데 일은 진척이 없었고 난 계속 미루기만 했다. 검토해야 하는 문서들을 출력해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한두 장 넘기다 덮어 버리곤 했다.
월요일엔 “내일 하자.”, 화요일엔 “이번 주 중에 하자.”, 금요일엔 “다음 주에 하자.” 하다 보니 어느새 8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하려고 하면 하기 싫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연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특별히 정리할 사항이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시는 받았기에 어떻게든 이렇다 할 내용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보고를 해야 끝나는 일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걱정을 했다. 지시하신 사장님이 언제 연락해서 “그 일 왜 아직도 보고 안 하냐.”라고 할 것만 같아서 초조했고, 내가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다 드러나 비웃음과 비난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8월 마지막 주 목요일 엑셀을 열고 검토해야 하는 문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첫째 열에 문서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둘째 열에 핵심 내용을 적었다. 중요하지 않은 문서는 넘겼다. 그다음 열에 그동안 수정하고 점검했던 내용을 연도와 월별로 정리했다. 그 정도 해 놓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금요일 오후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다. 퇴근 두어 시간 전에 다시 엑셀을 열었다. 넷째 열에 이번에 점검한 사항 중 오타 등 형식적인 사항 및 실질적으로 수정, 추가해야 할 사항들을 적어 넣었다.
인쇄 탭으로 들어가 문서를 가로로 돌리고 표가 인쇄 화면에 맞도록 여백과 표 크기를 정리했다. 인쇄 페이지 기준으로 다섯 페이지 정도 되는 표가 완성됐다. 이를 PDF파일로 전환하니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보고서가 완성됐다. 퇴근 10분 전, 메일을 열고 파일을 첨부한 뒤 보고 메일을 작성했다. “이번에 지시하신 **문서 전체 리뷰를 진행했습니다. 각 문서별 핵심 사항과 그동안 수정 반영한 사항 연혁을 정리하고 이번에 검토한 사항 및 의견을 담아 표로 만들었습니다. 이 표를 가지고 향후 주기적으로 **문서 점검을 하고 매년 8월 정기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멘트면 뭔가 노력했으며 앞으로도 잘 챙기겠다는 의지를 잘 담았다고 생각했다.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고 메일 보내기를 눌렀다. 퇴근 시간 3분 전이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고민하고 미뤘던 일을 끝냈다. 월말이고 금요일이라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했다. 좀 더 일찍부터 시작해서 꼼꼼하게 했다면 더 멋진 보고서를 만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기한 내 끝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컸다. 그렇게 일단락시켰고 홀가분한 주말을 보낸 뒤 한주가 시작됐고 수요일을 맞았다.
“사장님이 팀장님 칭찬 엄청 하시던데요?” 어제 다른 팀 팀장이 지나가다가 날 보더니 한 말이다. “어? 무슨 칭찬을?” 특별히 칭찬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팀장에게 무슨 얘긴지 물었다. 알고 보니 지난주 금요일에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고 사장님이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조금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날 것을 한 달 동안 내가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았던 것을 생각하니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검토 사항이 별로 없더라도 메일에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대충 쓰기보다 현황과 그동안 진행한 사항, 이번에 검토한 사항을 정리해서 표로 만들어서 보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 한눈에 볼 수 있고, 뭔가 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너무 미뤘으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너무 부풀려서 걱정하고 스트레스받았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미루지 말고 빨리 처리하자. 그리고 결과물은 최대한 성의 있게 만들어 적절하게 포장하자.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보기 좋게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도 늘 새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