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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대추

by 혼란스러워

이번 추석에 시골에 내려가서 보니 집집마다 대추나무에 커다란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어릴 때 보던 대추는 주로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으로 바짝 말려서 쭈글쭈글한 모양이었는데 요즘 나무에 달린 대추는 과장 조금 보태어 주먹만 했다. 식감은 아삭아삭하고 맛은 달콤했다.


명절 연휴에 시간도 남아 동네 산책 겸 돌아다니다가 잘 아는 집을 지나게 되었다. 한우를 많이 키우고 농사도 제법 크게 짓는 집이었는데 마당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마침 그 집 아주머니를 만나 인사를 드리고 서로 안부를 나누다가 내가 "대추가 탐스럽게 익었네요. 몇 개 따먹어 봐도 돼요?" 하니 "당연하지 많이 먹어." 하셨다. 두어 개 맛보고 주머니에 대여섯 개를 넣고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그 집을 나와 큰 냇가 제방을 따라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이루와~ 이루와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목소리였는데 난 순간, 대추를 따 먹었다고 혼내러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는 자전거에서 내리며 "얼른 와 대추 따줄 테니 갖고 가서 어머니도 드리고 많이 먹어."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도 못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아저씨를 따라갔다.


"안 그래도 어머니 좀 드리려고 했는데 잘 됐네." 하시며 사다리와 비닐봉지를 갖고 오시더니 잘 익은 대추를 잔뜩 따주셨다. 고향이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게 고향 인심이고 시골 인심인가. 고향을 떠나 살고 있지만 내가 고향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대추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연휴를 보내고 그 나무를 살펴보니 그 많던 대추는 다 사라지고 없었다. 관리실에서 땄는지, 동네 어르신 누군가가 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추를 보고 입맛만 다시던 내 모습이 생각나며 고향에서 그 아저씨가 따 주신 대추 맛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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