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왜 이렇게 어려워요?”
1학기 기말고사(2차 지필평가)가 끝나고 여름 방학을 앞둔, 그리고 창밖의 햇살이 기분 좋게 비춰오기까지 하는 도덕 시간은 종종 아이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곤 한다. 아이들은 영화 감상 같은 편안한 수업을 기대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어 가끔은 애를 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중요한 가치들, 꼭 나누고 싶었던 내용들을 그냥 지나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주제는 ‘정의로운 사회와 분배 정의’로 제법 무게감 있는 내용이었다. 교과서 말미에 예시로 등장한 것은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학급이 받은, 10만 원 상당의 문구 상품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수업 전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던 말에 호응하듯, 고마운 아이들은 진지하게 교과서에 제시된 예시에 따라 답을 찾아보았다.
“공평하게 똑같이 나눠야죠.”
“그래도 중요한 역할을 한 친구에게 더 주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등등.
하지만 물가 상승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문구 상품권 10만 원은 서른 명 넘는 반에서 나누기엔 어쩐지 와닿지 않는, 시큰둥해지고 마는 액수다. 그래서 실제로 아이들이 겪었던 기억과 연관시켜 보고자 물었다.
“얘들아, 너희반 얼마 전에 체육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생각나니?”
그 말에 아이들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우승 상품으로 과자가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박스를 받았었다. 분배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뜨거운 환호성을 지르고, 선생님은 박스를 뜯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줄부터 차례로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금세 박스는 비었고, 별다른 갈등도 없었다. 그저 시끄럽고 즐거운 나눔의 축제였을 뿐.
그 기억을 상기시킨 뒤, 다시 교과서의 문제로 돌아왔다. 상황을 조금 바꾸어서 물어보았다. “과자는 그렇게 손쉽게 나눴는데, 만약 그때 받은 게 과자가 아니라 ‘현금 50만 원’이었다면 어땠을까?” 현실의 즐거웠던 기억과 연결되자, 비로소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적극적인 한 아이가 먼저 손을 들었다. “그거야 간단하죠. 아까 답에 있던 것처럼, 1/N 하면 되잖아요.” 그 명쾌한 그 해법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세 다른 아이가 반박했다. “흠.. 그래도 마지막 계주 때 OO이가 아니었으면 우리 반 역전 못하고 최종 2등이었어. 50만 원이면 액수도 큰데,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챙겨줘야지.” 지목당한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어깨를 으쓱해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때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 그러면 쉬는시간마다 나와서 연습했던 애들도 있잖아. 걔들도 단체 줄넘기 한 번도 안 걸린 거 생각해줘야지.”
“흠.. 응원석에서 목 터져라 응원한 사람도 잊지 말아주면 좋겠는데?”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의 마음에 수업 내용이 스며들었구나- 싶어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수업 방식인 '쪽지에 자신의 의견을 써보기'로 아이들을 유도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배방법,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익명으로 적어내는 형태였다.
반 전체의 쪽지를 걷어 잘 섞은 다음, 하나씩 펴서 소개해주었다. 날 것의 표현을 살짝 필터링하거나 조금 재치 있게 바꾸어 읽기도 하기에 집중과 반응이 연달아 이어지곤 한다.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는 게 좋겠다. 줄다리기 하려고 일부러 살 찌운 애들도 있는데, 야식 값의 반의 반도 안 나오기 때문.”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의견도 읽어주었다. “사람 수대로 똑같이. 누구한테 더 주느냐 가지고 싸우느니 그냥 공평하게 하는 게 좋다.” 여전히 일반적인 중론이었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썼다. “학교 끝나고 다 같이 남아서 떡볶이랑 피자 사 먹어요. 혹시 모자라면 선생님이 좀 보태주시면 안 될까요? ㅋㅋㅋ” 몇몇 아이들은 합법적으로 학원 빠질 수 있는 기회라며, 너무나 천재적인 의견이라고 동조했다.
웃음이 이어지던 중, 한 쪽지가 조용한 반응을 불러왔다. “혹시 반에서 꼭 돈이 필요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교과서 예시에 소개되어 있는 의견 중의 하나이기도 했던 내용이었다. “지가 받는 것만 기부하면 될 일이지, 착한 척 하네.”라는 식의 장난섞인 비아냥이 살짝 나오기는 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말없이 그 문장을 곱씹는 듯했다.
수업 막바지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때요. 지금까지 나온 의견 중에 ‘틀린 의견’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전하고 싶었던 내용을 꺼냈다.
“우리는 아직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만약 우리에게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교실 안 50만 원이 아니라, 한 사회의 자원을 분배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올까요? 어떤 결정을 내려도 누군가는 불만이고, 그렇다고 결정하지 않으면 모두가 답답한 상황. 우리가 살아가면서 명백히 악당이라고 생각되는 이와 옳고 그름을 논쟁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어요. 현실의 대부분의 갈등은 바로 지금처럼, 저마다의 타당한 ‘옳음’과 ‘옳음’이 서로 겨루기에 더욱 어렵게 다가오곤 해요.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한 아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덕은 왜 이렇게 어려워요?” 그 질문에 옅은 공감의 웃음이 지어졌다. 그것은 어떤 경우든 딱 들어맞는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각자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런 결정을 해야 할 자리에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조심스러운 자각이 마음속에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어린이 만화처럼 명백한 선과 악이 싸우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옳음’이 부딪히고 조율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이들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계속해서 충돌하는 이 복잡함을 단순한 승패의 싸움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틀렸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 그래서 도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그날의 수업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시나마 고민했던 그 내용은 사실 인류가 오래도록 씨름해 온 질문이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누구에게 어떤 몫을, 어떤 기준으로 분배할 것인가. ‘평등’, ‘업적’, ‘노력’, ‘필요(복지)’라는 서로 다른 이름의 정의(正義)가 충돌하는 진짜 세상의 문제를, 아이들은 오늘 네모난 교과서의 글자 너머 바로 곁에 있는 친구의 말과 태도, 얼굴 표정들을 보며 온몸으로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