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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본 적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를 헤아린다는 것

by StarCluster

위로라는 단어 앞에서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머물러 있을 때가 있었다. 한숨을 내뱉던 입, 그리고 그 안에서 어쩔줄 몰라 이리저리 구르다 건조해져버린 혀는 결국 발음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 건너왔던 말이 나의 가슴을 찔렀던 아픔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기에 상대방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까’. 손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 마음 언저리를 맴돌 뿐이었던 정적. 시간이 흘러 자리를 벗어나도 떠오르는 그 순간. 제대로 말을 건네지 못한 채 함께 슬퍼하며 우물쭈물 서 있던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상상할 수 있을까?


되어본 적 없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실로 기묘하면서도 낯선 일이다. 나는 타인의 삶을 온전히 경험한 적이 없고, 그의 시간을 살아본 적도 없다. 모든 고통은 저마다의 감각으로 해석되고, 모든 기쁨은 고유한 풍경을 지니기에 완전한 이해란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사색 뒤에는 타인의 세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며, 조용한 무력함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바로 그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공감의 출발점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누군가의 감정 앞에 조심스레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끝내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한 걸음 다가서려는 마음들이 있다.


공감이란 적극적인 상상력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조각들을 빌려와 너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더듬어보는 일이다. 내 안의 낡은 상처나 깊은 외로움, 사소한 불편함까지도 동력으로 삼아, 당신이 서 있는 자리를 희미하게나마 보듬어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향한 이 아이러니한 시도는 곧 나 자신을 향하는 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때, 우리는 문득 스스로의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눈물에 나의 슬픔이 스며든다. 그의 웃음에 나의 기쁨이 다시 피어난다. 잊고 지냈던 감정이 함께 묻어나온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한계 속에서도, 타인의 이야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정의 결을 천천히 되짚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상상이 빗나가 서툰 위로로 흘러가기도 한다. 마음을 다해 건넨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아픔에 끝까지 함께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오래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자신이 익숙한 영역으로 돌려버리곤 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교적 편한 일이니까. 심지어 상대의 고통을 자기 서사의 재료로 삼아 중심을 옮겨버리는 말도 듣곤 한다. 그렇게 공감의 방향이 상대가 아닌 화자 쪽으로 휘어질 때, 위로의 자리에서조차 상처가 생겨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향해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우리의 시도 자체는 결코 위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서툴더라도 타인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행위는 관계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보다 성숙한 지혜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누군가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한 걸음씩 다가가려는 사람들. 말을 고르다 차마 건네지 못해 그저 조용히 곁을 지키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다듬으며,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서툰 진심을 전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여전히 견딜 만한 곳이 된다.


어쩌면 위로의 순간 필요한 것은 정형화된 언어나 의무로 박제된 차가운 표현이 아닌,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불완전한 나의 결핍을 징검다리 삼아 상대의 세계로 건너가려 애쓰는 시도일 것이다. 반응을 바라지 않고서도 그 자리에 고요히 머무르려는 인내가 동반된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말하려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침묵과 불안한 눈빛, 밭은 숨소리, 격앙된 말들, 흘러내리는 눈물, 혹은 떨리는 어깨를 비집고 나오는 흐느낌 앞에서 조심스레 상상하며 ‘묻는 것’, 또 잠잠히 ‘듣는 것’일 테다.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공감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조금씩 인간이 되어 간다.


© 2025. StarCl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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