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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닿는 자리, 마음 두는 자리

by StarCluster

눈이 닿는 자리


창고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그렇게 찾았던 이층 침대 결합 나사 키트를 발견했다. 이층으로 합쳐져 있던 아이들의 침대를 각각의 침대로 분리해 사용하면서 ‘다음에 필요하니 잘 놓아 두어야지’ 하고 고이 챙겨놓았던 것들. 그런데 막상 다시 조립하려고 하니 예상한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아 결국 미뤄둘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나사였다. 분명 너무 잘 보관해 둔 탓에 못 찾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구석에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밀폐된 박스 속에서 먼지조차 내려앉지 않은 작은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옆에 놓아두고 청소를 이어가다 문득,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찾던 사실조차 잊어버린 이 나사들처럼, 어떤 것들은 시선이 닿지 않기에 존재 자체가 흐리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을까?


바라봄의 방향에 따라 마음 머무르는 자리 또한 달라지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마음을 두었던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도.




1. 그리움의 시선


눈앞에서 사라졌는데도 오히려 더 단단히 마음속에 자리 잡는 감정이 있다. 보이지 않기에 더 또렷해지는 얼굴. 닿을 수 없기에 더 짙어지는 온기. 헐거워져 있는 마음을 조여내듯, 그리움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았다. 한때의 시선으로 남은 줄로만 알았던 자국이 지금의 마음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으니까.


그리움은 작별과 단절, 상실과 소멸이 만든 부재의 상태에 시선을 둔다. 그리고 그 부재에 기대어 오히려 더 강렬히 모습을 드러낸다.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의 거리를 반복해서 되새김질한다. 그리움은 곧 눈으로는 온전히 볼 수 없는 ‘엉긴 마음의 시선[凝望]’. 그 시선은 부재를 더 오래도록 나의 안에 머물게 만들었다.




2. 사랑의 시선


그리움이 부재를 향한 시선이라면, 사랑은 지금-여기 존재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시선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 속으로 빠져들어 있을 때가 있다. 몸은 곁에 있어도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순간들. 그러다 아이가 놀아달라며, 그림을 그렸다며 나를 불러 세운다. 그때 문득 정신을 차려본다. 나는 잠시 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마음이 비어 있는 자리에 육신만 놓여 있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 속에서 시선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그러니 아이가 내 손을 잡아 끄는 것은 단순한 요구의 신호만은 아닌 것이다. 그 작은 손은 내가 잠시 방임해 둔 마음을 지금, 그리고 여기로 불러들이고 고정시켜주는 힘이 된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일은 시선의 교환을 넘어, 흩어졌던 나의 중심을 다시 놓는 행위가 되어 주었다. 사랑은 결국 이렇게 제자리에 선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마음의 방향을 맞추는 일인 셈이다.




3. 불안의 시선


사랑이 지금 이 순간을 단단히 붙드는 시선이라면,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미리 감지하려는 바람을 담은 시선이다. 그러나 불안은 때때로 현재를 흩어지게 만들곤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장면을 붙잡느라 이미 곁에 있던 온기를 놓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불편한 시선 또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방식이라는 것을 긍정하게 되었다. 사랑이 우리를 ‘여기’에 머물게 한다면, 불안은 우리의 ‘내일’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니까. 마음이 어느 무게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내면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열린다. 다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히 조율할 수 있다면, 불안은 마냥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점검하고 조여두는 예민한 감각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마음 두는 자리


박스 속의 나사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본다. 차갑지만 묵직한 이 작은 금속들이 모여 이 무거운 침대를 단단히 잇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문득, 여러 마음들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간 그리움과 다가올 불안, 그리고 지금 내 안의 사랑이 서로 맞물려 조여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뼈대가 튼튼히 서는 것은 아닐까.


나사를 하나씩 침대 프레임에 끼우는 것처럼, 헐거워진 틈을 메우는 것은 결국 나의 시선들이었다. 눈이 닿는 자리마다 내 마음도 거기 깃들고, 어디를 바라보든 그 모든 눈길이 모여 오늘을 지탱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때로는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앞을 내다보며, 다시 지금을 응시하는 이 반복된 시선의 궤적을 생각해본다.

그 부지런한 눈맞춤들이 모여 '나'라는 집을 지어가고, 또 가다듬는 일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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