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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안녕 루아야

by 송영채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나까지 기억을 잃어서… 루아는 10년 동안 혼자 너무 외로웠을 거야. 루아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오빠 자격도 없어.”


루아의 시스템이 접속을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자, 남자는 점점 초조해하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소년 역시 루아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어 긴장되기 시작했다.


원통형 기계 앞의 빈 공간에 홀로그램으로 동그란 표시가 그려지더니, 이윽고 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14살의 모습으로 나타난 루아였다.


“루아야… 오빠가 왔어… 루아야, 미안해…”

남자는 루아의 홀로그램이 빛나는 허공을 손으로 휘저으며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입술을 깨물며 참아보려 했지만, 어느새 눈가에 고인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어느 날부터 오빠도 오지 않아서 너무 궁금했어. 그리고… 외로웠어.”

루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운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마치 연기하는 듯 느껴졌다.


“미안해, 루아야. 오빠가 너무 늦었지. 오빠도 너무 힘들어서… 잠시 도망쳤던 게, 너무 오래 걸렸어. 혼자 많이 외로웠지?”


그제야 루아는 그동안 자신의 내면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들려주었다. 무의식 속으로 흩어지려는 자신의 의식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자꾸 잡아당겨 제자리로 돌려놓았다고 했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스스로와 문답을 나누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자신의 형상이 무너져 내리곤 해서, 루아는 종종 길을 잃었다고 했다.


“부모님과 오빠가 자주 올 땐 그렇게 방황할 일이 없었어. 잠에서 깨어나면 익숙한 가족들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추억을 회상하고, 다시 잠들면 되었거든. 그런데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영원한 잠을 자다 보니, 그 안에서 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흘러내리고, 다시 조합되었어. 그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었는데… 그때마다 초기의 나, 각인된 의식으로 다시 짜 맞춰져야 했어. 그런데 그 ‘초기값’이 매번 너무 새로웠어.”


“너는 루아잖아. 오빠가 이제 왔잖아. 앞으로 자주 올게. 우리 예전처럼 이야기 많이 나누자. 옛날이야기, 부모님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 루아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아, 여기 봐. 부모님 사진… 보이지?”


“나에게도 그분들의 얼굴이 저장되어 있어. 다만 매번 아주 새롭게 인식돼. 그분들이 나의 부모님이고, 오빠가 나의 오빠라는 사실은 변치 않아. 영원히. 하지만 그 의미가 자꾸 각색되고 변형되면서,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뒤섞여 버려. 그걸 스스로 인식할 때마다 나는 매번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


“루아야, 오빠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루아가 너무 괴로운 건 싫어. 치료받는 방법이 있을까? 아니면… 다시 초기화시키면 될까?”


“아니야. 내가 살았을 때, 부모님께 부탁했던 기억이 나. 몸이 없더라도 내 의식이 가족들 곁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의식 복제를 부탁했잖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치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내 의식 속에서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가족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추억을 곱씹었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흩어지고 싶어. 진심으로.”


“그게 무슨 소리야, 루아야. 오빠가 이제 왔는데… 내가 너무 늦어서 그런 걸까? 난 아직 널 보낼 준비가 안 되었어.”


“오빠, 내 의식이 복제되던 날, 나는 이미 죽은 거야. 오빠는 그때 나를 한 번 떠나보냈잖아. 이제 진짜 나를 보내줄 시간이야. 이제 정말로 자유로워지고 싶어.”


루아야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니… 루야아, 그런 말 하지 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남자를 타이르듯이 루아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 내가 간다고 해도 우리 함께했던 추억은 변하지 않아. 나는 언제까지나 오빠와 함께 할 거고, 오빠를 사랑할 거야.”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동생을 향한 죄책감이 가장 큰 이유였고, 마지막 남은 혈육을 다시 떠나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0년 만에 막 동생을 만난 참이었다.


“오빠도 언젠가 늙어서 죽게 될 텐데, 어차피 우리 그때 이별해야 하잖아. 그냥… 날 조금만 더 일찍 보내준다고 생각해. 내가 점점 더 꼬여 나가다가 터져버려서, 아무 의미 없는 조각들로 흩어져 버릴까 봐 겁이 나. 그전에 나를 보내줘.”


루아의 간절한 부탁이 남자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루아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냈고, 이제는 루아의 의식마저 저버려야 했다. 부모님도 없는 이 현실에서,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은 남자에게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남자는 주저앉은 채로, 문가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소년을 향해 절박하게 소리쳤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미안해요…”


무너져 있는 남자를, 소년은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소년은 마음을 다해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저라면 잘 보내줄 것 같아요. 지금 관장님 마음속의 루아는 웃고 있을 텐데, 저 기계 안의 루아는 울고 있는 것 같아서요.”


소년의 말을 들은 남자는 한동안 침묵 속에 잠겨 있다가, 결심이 선 듯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동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겠다며, 소년에게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뒤편에서는 홀로그램의 빛이 무작위로 점멸하다가, 이내 조용히 허공 속으로 삼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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