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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 분노의 순례자

by 송영채

매주 월·수·금요일, 소년은 방과 후에 교정국 청소년과에 가게 되었다. 금요일에는 모니터링과 스크리닝을 시행하고, 나머지 요일에는 또래들과 영상을 시청하거나 홀로그램 선생님에게서 특별 수업을 듣는다. 보통 학교 1교시 수업에 배우는 생명 존중 교육과 다를 바 없었다. 보호자의 세밀한 보호가 어려운 또래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호’와 ‘교육’을 명목으로 사실상 시간과 자유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같은 애들은 자유 시간을 가질 자격도 없다는 뜻인가.’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교정국 방문을 마친 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면 되겠다. 집중 관리 대상에서 해제되어 전자팔찌를 끊을 때까지만 조금 더 참으면… 그때가 되면 다시 X 박사를 찾으러 갈까, 아니면 미래 체육관에 운동이나 다녀도 좋을 것 같은데…’


소년이 생각에 잠긴 채 교정국 근처 사거리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찰나, 그의 앞에 특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검은색 누더기 옷을 걸친 남자가 바닥에 이마를 대고 기어가듯 절을 하고 있었다. 낡아 헤진 신발은 테이프로 동여매어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한 점은,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인파 중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의아해진 소년이 한참 그 자리에 서서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자, 순찰 로봇이 다가와 물었다.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어서 접근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기… 저 아저씨, 괜찮으신 걸까요? 저러다 잡혀가는 것 아니에요?”

“저 사람은 벌써 10년째 이 거리에서 절을 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 행위자로 신고되어 교화를 받았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무관심해졌지요. 현재 그 사람의 정서 모니터링은 정상이며,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아 추가 제재는 할 수 없습니다. 혹시 불편하신가요? 민원을 접수하시면 관리자가 출동하여—”


소년은 황급히 로봇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에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그냥… 신기해서요. 괜찮습니다.”


소년은 발걸음을 옮겼고, 로봇도 다시 순찰을 떠났다. 한 남자가 길 한가운데에서 계속 절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소년은 로봇의 눈치를 보며 남자의 모습을 흘끔거렸다.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다음부터 교정국에 갈 때마다 소년은 그 남자를 관찰했다. 교정국 건물 주변 도로를 따라 하루 종일 절을 이어가는 모습을… 며칠을 지켜본 끝에 소년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지저분했다. 한 팔 정도 간격까지 다가가자, 그의 입에서 기도문 같은 말들이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니, 수많은 이름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김혜진… 이근… 장미라… 최빛… 한준오… 최시후… 이지안… 유하린… 서이준… 류태인… 오세림… 변지헌… 서봄…”


남자가 멀어지자 이름들도 함께 희미해졌다. 쉼 없이 절하는 남자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들의 수수께끼에 빠져, 소년은 잠시 길 위에 굳어 있었다. 잠시 후, 길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품에서 작은 포장 용기를 꺼내 남자에게 건넬 때까지. 남자는 말없이 가볍게 목례하고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그제서야 소년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하기도 전에—소년은 황급히 달려가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여자가 화들짝 뒤돌아보았다.


“뭐죠?”

뒤돌아보니,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람이 작은 소년이라는 사실에 여자는 더 당황한 눈치였다.


“아,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며칠 전부터 저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거든요. 방금 도시락을 건네시는 걸 보고… 너무 궁금해서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궁금할 수 있지요.”


여자의 의심스러운 눈빛은 금세 누그러져, 이제는 약간의 친밀함을 품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다듬으며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어려 보이네. 편하게 말해도 될까?”


“네. 아… 저, 저는 방과 후에 교정국에 다니고 있어요. 3주 전에 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계속 보고 있었어요. 혹시 가족이세요?”


“가족은 아니야. 나도 지나가다 보게 됐어.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잠은 어디서 주무시는지 궁금해서 다가갔다가… 조금 돌봐 드리게 됐어. 잠은 길에서 절하다가 그대로 주무시는 것 같더라. 끼니는 드시는 걸 보기 힘들어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했어.”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시는 거예요?”


“응. 동생이 아픈 뒤로 식사를 직접 만들어 보기 시작했어. 내 손으로 따뜻한 밥 한 끼 해 주지 못해서 아픈 건가 싶어서. 지금은 동생이 없는데도 습관이 들어서 계속 하게 되더라고. 그 김에 아저씨께도 좀 가져다 드리는 거야. 혹시… 저 아저씨가 이름 말하는 소리, 들었니?”


“네. 계속 다른 이름들을 중얼거리시던데요?”


“내가 전에 여쭤본 적이 있어.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건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좀 놀라시면서 말하더라고. 십 년 넘게 절을 하고 있는데,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사람들 눈에는 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나 봐요.”


“그러게. 참 신기하지….”

여자는 새삼스럽다는 듯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인파를 한 차례 둘러보고는, 다시 소년에게 시선을 돌려 말을 이었다.


“그 이름들은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목숨을 잃고 희생되어 가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면서… 어떻게든 그 사람들을 위해 빌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으셨대. 그래서 절을 시작하셨다고 하시더라고.”


여자는 어느새 바닥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소년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난 저 할아버지가 기도하며 절하는 모습을 보면 묘하게 위로가 돼. 저분이 이 허물어져 가는 사회의 한 귀퉁이 정도는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이상하지?”


여자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더니 흠칫 놀라 손을 흔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지금 가볼 데가 있어서. 다음에 또 보자. 잘 가!”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너 달려갔다. 순간, 소년도 흠칫 놀라 시계를 확인하고는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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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