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다시 만난 건 첫 만남으로부터 2주 뒤였다. 할아버지가 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년의 눈에, 도시락을 건네는 그 여자의 모습이 또 들어왔다. 소년은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아, 그래. 너구나. 오늘도 교정국에 다녀오는 길이니?”
“네. 저 여기 올 때마다 할아버지를 좀 보고 가요.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서요.”
“너도 그렇구나. 너, 무슨 요일에 온다고 했지?”
“저 월·수·금요일이요. 끝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요.”
“그럼 너 가끔 나랑 만나서 얘기할래? 여기 순례길에서. 아 나는 저 할아버지가 순례자라고 생각해서, 이 길을 순례길이라고 부르고 있어. 나는 5시 40분쯤 할아버지께 도시락을 드리러 오거든. 6시 반까지만 도착하면 되니, 30분 정도는 시간 낼 수 있어.”
“네. 좋아요.”
소년은 매주 그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되고, 궁금한 것을 맘껏 물어봐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놓이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사가 늦었네. 나는 혜린이야. 정혜린. 혜린이 이모라고 불러.”
“이모요?”
“그래 이모. 친한 아줌마들은 원래 그렇게 부르는 거야.”
여자는 말하며 미소 지었다.
“너 이름은 뭐니?”
“저는 수호예요. 김수호.”
“멋진 이름이네. 세상을 지키라고, 부모님께서 그렇게 멋진 이름 지어주셨나 보다.”
여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 이름에 그런 뜻이 있었나?’
생각하며 소년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둘은 나란히 앉아 순례자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주로 여자가 이끌었고, 소년은 그녀의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하곤 했다. 때때로 대화가 끊겨 둘 모두 말없이 앉아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소년에게는 그 정적마저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동생이 많이 아파. 매일 퇴근하면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하고, 아저씨께 도시락을 드린 다음에 요양원에 가서 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고 와. 그게 내 나름의 순례길이야. 벌써 2년째 그러고 있어.”
“동생이 많이 아픈가요? 어디가 아픈가요?”
“어디가 아프다고 해야 할까? 팔이 다쳤다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하면 말하기 쉬울 텐데… 동생이 아픈 곳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요?”
“응. 머릿속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소년은 잠시 말을 고르고 나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희 엄마도 지금 약물 치료 중이신데, 맨 정신으로 깨어 있는 모습을 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 늘 ‘엄마는 많이 아프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사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말이 끝나자, 둘은 잠시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들의 대화는 매주 월·수·금요일, 이 순례길에서 드문드문 이어져 나갔다.
여자의 막내 동생은 그녀와 나이 차가 꽤 난다고 했다. 부모님을 잃은 뒤, 두 사람은 단둘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여자는 부모님을 잃은 상실감을 다 추스르기도 전에, 어린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고 했다. 보조금만으로 지내다 보면 자신뿐 아니라 동생의 앞날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에 몰두하는 동안, 여자는 동생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만 믿었다. 동생이 이상해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녀는 뒤늦게 동생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동생이었는데… 자기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 버추얼 아이돌이랑 자꾸 비교하면서 밥도 자주 굶고 그랬거든.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어. 참, 나쁜 언니지…. 돌이켜보면, 동생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며 살았던 것 같아.”
“어떤 신호를 보냈는데요?”
“음.. 친했던 친구가 자기를 좀 무시하고 멀리한다고. 그런 이야기도 있었고, 자기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술을 해달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뭐 그런 이야기들을 했어. 그때마다 친구 사이에서 언제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고 다독였고, 지금 얼굴이 얼마나 예쁜데 그러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일축하기도 했어. 그러다 하루는 카드에서 큰돈이 빠져나간 걸 보고 동생 태블릿을 봤더니, 가상세계의 집을 아주 멋지게 꾸미고 비싼 옷들을 사놨더라고. 그때도 그냥 사춘기의 일탈로만 생각하고 조금 혼내고 말았어.”
여자는 손을 주무르고, 손바닥을 비비며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었던 것 같아. 동생이 외롭고 허전해할 때, 게임용 고글이랑 슈트를 사준 것도 나였어. 동생의 미래를 위해 돈 벌어야 한다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늘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사실은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잠시 무시하면 없는 일이 될 것처럼 계속 피했지.
결국, 그렇게 스스로를 갈아 넣어 번 돈으로… 내가 동생을 저 세계로 안내한 셈이 된 거야.”
여자의 눈에서 참던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사실 좀 이상하다 느껴질 때에도, 나는 동생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지 못했어. 큰 문제가 튀어나올까 봐 너무 겁이 났거든. 그러다 보니 동생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더라고. 동생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동생이 나에게 준 수많은 기회들을 전부 놓친 뒤에는,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었어. 그때 이미 혜수는 가상세계에 깊이 빠져버린 뒤였거든. 아, 내 동생 이름이 혜수야.”
“동생은 그럼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가상세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며칠째 자지도 먹지도 않고 가상세계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어. 헤드셋을 벗고 현실로 돌아오면 멀미 난다고 구토까지 하기 시작했지. 병원에 옮겨 중독 재활을 받았는데, 식사도 거부하고 잠도 안 자면서 현실을 완전히 거부했어. 결국 진정제 치료를 하게 됐고… 점점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숨만 붙여두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
여자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면서 무겁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그냥 메타버스에 접속하게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부탁했어. 그래서 지금은 요양원으로 옮겨져서, 계속 가상세계에 접속한 상태로 지내고 있어.”
여자는 동생의 초점 없는 눈빛을 본 순간,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동생의 눈에는 더 이상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았고, 가상세계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설령 그게 언니일지라도—동생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너는… 이해하려나? 엄마가 약물에 중독되셨다고 했지?”
“네. 저도 늘 그런 초점 없는 눈을 봐야 했던 것 같아요.
이젠 그마저도 볼 일이 없어요. 엄마 얼굴을 본 지… 오래됐거든요.”
“너는 어리니까 더 힘들었을 거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숨은 붙어 있는데, 내가 알던 영혼은 사라진 느낌… 내 동생이 숨을 쉬고 있어도, 동생이 죽어버린 것 같은 그 기분… 정말 너무 고통스럽더라.”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와 소년의 대화는 그렇게 월수금의 순례길에서 이어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