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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4) 생일파티 준비물

by 송영채

소년이 방과 후 교정국에 다닌 지 2개월, 순례길에서 혜린과 함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지도 벌써 1개월 하고도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계절은 벌써 여름의 문턱에 다다라 있었다. 소년은 교정국에서 담당자에게 부탁을 했다. 다음날인 목요일 방과 후에, 혜린과 함께 동생 혜수가 있는 요양원에 갈 수 있는지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담당자는 혜린의 신원을 조회하고, 방문하려는 요양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난 뒤, 잠시 후에 알려주겠다며 방을 비웠다.


목요일은 혜수의 생일이라고 했다. 혜린은 가족들과 함께 생일 축하를 해주던 과거가 그립다며, 소년에게 생일 파티에 참석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소년은 매해 생일마다 로봇으로부터 생일축하를 받고, 배송 온 작은 미니 케이크에 꽂힌 초의 불을 껐다. 그 케이크엔 소년이 태어난 날로부터 며칠째인지가 항상 새겨져 있었다. 소년은 매년 촛불을 불고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게 파티라는 것은 몰랐다. 웃으며 함께 나누는 기념보다는, 매년 1번씩 하는 의식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담당자는 소년에게 돌아와 목요일에 혜린과 요양원에 방문해도 좋다고 귀띔해 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순례길에서 만난 혜린에게도 소년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파티라는 건 말이지.”

혜린은 신이 나서 말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고, 모두 다 멋지게 차려입고 참석하지. 그리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함께 재미있는 게임을 하기도 해. 손님들은 주인공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오곤 하지만, 수호 넌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와도 돼. 또래 친구인 네가 오는 것 자체가 혜수에겐 큰 선물이니까. 알았지?”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처음으로 초대받은 친구의 생일 파티인데, 가져갈 선물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이나 학교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물건은 자동으로 조달을 받았지만, 그 외의 물건들을 구하거나 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온 소년은 자신의 물건들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옷과 전자기기, 신발, 그릇, 수저, 이불과 침대, 책상, 의자.. 그중 어떤 것도 소년의 것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국민이라면 나라에서 누구나 지급받는 것들, 이런 것들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 말고 소년의 필요에 의해서, 소년의 욕구에 의해서, 소장하고 있는 소년만의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은, 소년이 혜수의 생일에 줄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처음 초대받는 생일 파티인데, 그래도 의미 있는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소년은 이렇게 생각하며, 자기에게 있는 자기만의 물건이 무엇이 있는지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때 옷장이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책! 책이 있었지!’


그것만이 오로지 소년이 소유한 그만의 물건이었다. 소년은 방문을 닫고, 옷장을 열어 책을 꺼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고, 책을 한 장 한 장 열어 보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 투성이었지만, 이 책의 어떤 부분이 혜수에게 조금의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글자를 들여다봤다. 책 내용은 여전히 읽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혜수에게 읽어준다고 상상하며 읽으니, 오히려 조금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소년은 책을 넘기면서, 한줄한줄 읽어봤다.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도 힘들고,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왠지 혜수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보이면, 무작정 책장 옆 모퉁이를 접기 시작했다. 사서로봇에게 들었던 방식 그대로.



'존재 그 자체가 가장 많이 망각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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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는 대개 자신이 아니고, ‘타인-자기’, 즉 ‘세상 사람들(das Man)’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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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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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적 존재란, 바로 이 순간,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붙드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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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적 존재란, 현존재가 ‘세상 사람들’(das Man)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선택하고, 그에 응답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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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현존재가 자신의 본래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는 근원적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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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는 시간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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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몸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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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는 자기 자신의 주체로서, 자기 존재를 ‘앞질러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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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모서리를 접어가며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 밖에서 로봇이 노크를 했다.

“저녁시간입니다. 식탁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소년은 얼른 책장을 덮고, 책에서 접힌 모퉁이의 숫자를 세어본다. 모서리가 접힌 종이는 모두 8장이었다.


소년은 얼른 저녁식사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은 소년은 결심했다는 듯이 모서리가 접힌 페이지 8장을 모두 찢어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았나. 아니 이렇게 세모 모양으로 먼저 하는 건가.’


소년은 취미개발 시간에 배웠던 종이배 접는 방법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대각선으로 접었다가 펴서 다시 가로로 접어보면서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기웃거리다가, 어느 순간 소년의 손이 종이배 접는 순서를 기억해 냈다.


그렇게 소년이 접은 페이지 8장은 소년의 손에서 배로 다시 태어났다. 소년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 앞주머니에 종이배 8개를 포개어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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