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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갤러리 7화

카투사 생활

by 이승준

군인갤러리의 연재를 시작한 게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쓰지 못했다. 일단 군에서 전역을 했다. 그리고 신분이 전환되었다. 이 신분이 전환되었다는 말을 민간인들은 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군에서는 쓴다. 장교/부사관/군무원/병사 이런 것들을 신분이라고 하고, 부사관이면 하사/중사/상사/원사 이런 것들을 계급이라고 한다.

나는 계급사회를 4개월 전에 벗어났다. 22년 동안 하고.


군인갤러리 6화까지의 이야기가 22여년전 이야기이다. 여튼, 1년 반 동안에는 전역한 것 뿐 아니라 평택 부대에서 미2사단 본부대대 카투사 지원대장을 했으며, 그 전엔 동두천 미 순환배치 포병부대에서 했다. 그러니까 동두천에서 나는 아내와 떨어져 주말부부를 할 때 군인갤러리 1화를 쓸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쓰게 된, 내 브런치의 대표작(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인 <망한 세상을 걷는 그녀>, 그리고 <군인갤러리>를 쓰다가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고자, 네이버 블로그 IT카테고리로 하루에 3개씩 거의 1년을 매일 썼다. (https://blog.naver.com/ozcheez)


점점 커가는 아이들 둘을 독박육아하던 와이프가 우울증 직전까지 오게 되어 동두천으로 이사를 가네 마네 하며 양주 옥정 집을 알아보기까지 하다가 극적으로 '고충간부' 제도로 평택에 다시 넘어와 가족과 합치게 되었던 것이다.


여튼, 그러다가 보니 지금 다시 펜(키보드)을 잡게 된 듯 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군인갤러리는 현재 나를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카투사 후배나 나와 함께 했던 카투사 친구들이 꽤나 군인갤러리에 대한 흥미를 보였기도 했고.


전엔 브런치 글을 쓰고 나서 몇번의 퇴고를 거쳤지만, 지금부터는 퇴고 없이(또는 맞춤법 및 문맥 검사 겸 한 번) 자연스레 쓰려고 하니, 참고하시고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카투사 이등병 생활은 그렇게 흘렀다. 매일매일 농구하고 밤에 다림질하고 전투화 닦고 새벽에 피티하면서. 나는 체력이 좋았다. 재입대를 한 것이기도 하고 준비도 많이 했었다. 자대에서도 290(300점 만점) 이상은 늘 받아서 기대치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단순하면서도 고분고분한 성격은 미군들에게도 잘 맞았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학생이었다. 내가 순종함으로써 그들이 기뻐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20대가 되어서도 내 삶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미군 부사관(NCO, 후일 나의 career에 motive가 됨)은 장교 아래에 있는 계급으로서 자부심 있게 병사들의 훈련과 예절, 제식, 규율 등을 가르치고 지켜보고 코치하고 멘토링하는 부대의 중추(Backbone of the Army)라고 불리는 집단이다. 나는 그들이 하라 하면 했다. 군인이라 함은, 전쟁을 대비하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평소(평시, peace time)에는 극단적으로는 실업자다. 전쟁을 대비해 훈련하고 계획을 바꿔서 또 연습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체력단련은 필수. 미군 NCO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야, 우리 푸쉬업 50개만 하고 일하자"하면 다같이 엎드려서 푸쉬업을 한다. 그걸 누가 틀린 방식이라 하겠는가. 사실 나는 그런게 재미있었다. 얼차려를 받는 것도 아니고 미군NCO는 우리를 충분히 respect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매일 아침 피티는 체력적으로는 무척 힘든 시간임과 동시에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같은 소대에 있는 미군 중에 SPC McCain(맥케인 상병)이라는 흑인 친구가 있었는데 소대 미군 중에 제일 잘 달렸고 나는 막내였으면서 소대 카투사 중에서 체력이 제일 좋아서 은근한 경쟁을 항상 했다.


우리는 피티를 성남 부대 안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게이트를 나가 부대 맞은편에 있는 산에도 막 뛰어올라가고 그랬다. 맥케인과 경쟁하면서 2-3번 빼고 거의 이겼던 것 같다. 내 체력 이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뒤에서 선임들이 "뛰어. 맥케인 이겨. 지면 뒤져."라는 눈빛으로 갈구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겠는가. 지금은 좋은 형인 최OO 씨, 친구인 김OO 씨. 둘은 기억할까? 좋은 추억이다.


미군들과의 체력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시니어 카투사 Lee는 일주일에 세번씩이나 후임들을 데리고 2마일을 뛴다. 밤 8시에 강제로 집합해서. 얼마나 싫었을까? 하지만 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고 뛰기 싫어하는 표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항상 정해진 시간에 후임들을 집합시켰다. 심지어 부대 앞 초원식당에서 단체 회식을 하고 온 날에도. 내가 생각해도 악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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