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즘, 소설을 쓰고 있어요

by 무지개인간

브런치스토리에서 보내는 알림을 수시로 받는다.

[글 발행 안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처음 이 문자를 받았을 때는 괜히 마음이 철렁했다. 이전에 받은 문자에는 더욱 마음이 많이 움직였고.

[글 발행 안내] 구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요. 작가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에게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글 발행이 뜸한 브런치스토리 작가라면 누구나 받는 문자이지만,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불편함 외에도 말하기 쑥스러운 서운함이 은근히 밀려온다.

'왜 그래, 내 작가의 서랍도 안 열어보고.'


나는 글쓰기를 멈춘 게 아니다. 지난 3월부터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아직 비밀에 부쳐두고 싶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빠트리게 된다. 누구를 만나도 소설을 쓰고 있다는 소식보다 더 몰입해서 말할 주제가 매번 있었던 탓에 소설을 쓰는 것 외에 딱히 덧붙일 말이 없는 근황은 깜박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지금, 말 대신 글로 “요즘 소설을 쓰고 있어요.”라고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소설을 쓰는 일도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시작했다. 지난겨울에는 그간 내가 '인생책'이라고 일컫는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그 인생책이 ‘이번에는 너도 써봐’라며 부추긴 셈이다. 결국, 인생책의 부추김에 마음이 흔들려 어느 날 문득, 소설을 함께 쓸 친구를 구했고 그렇게 우리는 소설을 쓸 용기를 나누고 채우고 있다. 게다가 '무작정', '우선' 쓰기로 한 덕에 아직까지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다. 오히려 즐겁고 설레는 시작하는 마음에 둘둘 말려 있다.


어제까지 5편의 글을 썼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소설의 첫 글을 손가락 끝을 이용해 글로 옮기는 데에는 한 달을 훌쩍 넘게 걸렸다. 두 번째 글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데도 스무날이나 썼다. 그러므로 가볍게 툭 던지는 말을 글로 쓰는 일은 무척 신중한 편인 나는, 아마도 탄력을 받은 그다음 글들의 영향으로 "저 요즘 소설을 쓰고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게 된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전히 재미있고, 이야기가 하나씩 모이는 게 신기하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지만, 차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안되면 걸어서라도 그곳에 도달할 기미는 보이니 뱉은 말을 거두는 책임감도 필요한 순간이다.


소설을 쓰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에세이보다 글을 쓰기가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브런치스토리에 올리는 글을 며칠을 두고 읽어보고 고치지는 않지만, 두어 번 고치며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나도 모르게 과하게 들어가는 은유적인 표현을 걷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 부분이 훨씬 자유롭다. 게다가 일단 쓰고 보는 단계에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또, 글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 아닌 듯, 진짜인 듯 아닌 듯한 현실과 허구 사이의 간극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다는 점도 빼놓지 못할 즐거움이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과 새로운 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며 새 글 알림을 독자들에게 보내본다. 그저께는 어린이날이었다. 그날 우리 집 아이들은 가게에 구경을 하러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초콜릿과 함께 어린이날을 축하받았다. 순수한 마음이 잔뜩 오갔던 날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저 기쁘게 기억이 된다. 소설을 쓰는 내 마음도 그렇다. 아직 주름 하나 없는 다섯 살 아이와 같은 마음로 소설을 대하고 있다.


함께 사는 제비들, 이야기 씨앗을 물고 오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봄이 와서 채집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