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은 짧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8월 중순이 지났고 오늘이 개학이다. 수업 준비도 어느 정도 해놨고 행정적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다. 그냥 학교에 가서 수업하고 담임업무를 하면 되는 아주 평범한 날이다. 방학 동안 반 아이들에게 특별히 심각한 연락을 받은 것도 없다. 이만하면 완벽한 개학날이다.
라고 열심히 생각하지만.
긴장이 된다. 매 학기가 이래왔다. 1학기보단 2학기가 낫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약간은 덜해지지만 전날부터 학교 도착하는 순간까지는 뭔가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내가 좀 예민한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똑같은 일은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아직 이렇게 쫄아 있다니. 운전을 하면서 아직 멀었네-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긴장이 싹 사라진다. 그냥 와야 할 곳에 온 느낌. 아니다. 이건 너무 부정확한 표현이다. 정확하게는 금요일에 퇴근해 월요일에 출근한 기분이다. 나에게 방학은 꿈이었고 상상일 뿐이라는 느낌. 집에 와서 왜 이런 느낌일까 물으니 아내가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단다. 학교가는 게 좋아서 집에서 힘든 걸 잊어버리는 거라고. 그런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반박할 말이 없다. 육아는 힘드니까.
복도에서 만난 한 녀석에게 잘 지냈냐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걸 보니 잘 지낸 것 같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새까만 놈 앞에 새하얀 녀석이 앉아 있다. 넌 집에서 핸드폰하고 놀았구나-하니 어떻게 알았냔다. 난 다 알고 있다고 도사인 척을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교실은 에어컨 덕에 시원한데 복도가 찜통이다. 교무실로 오는 사이에 녹아버릴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복도가 조용하다. 복도가 조용하니 좀 좋기도 하다. 더위가 좋은 점도 있네 하고 지나오는데 한 녀석이 선생님 얘 쫌 보세요! 하고 이른다. 그렇지, 일름보들이 온 걸 보니 개학을 했구나- 하고 하하 웃는다.
퇴근 시간에는 교무실 안에서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다. 첫날은 고되니까 서로 격려한다. 선생들도 개학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개학을 했다는 건 이제 다음 방학 때까지 내 새끼들은 저녁까지 못 본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떨어져 있으니 안쓰러워서 급하게 왔는데 둘째가 엄마아빠다! 하고 뛰어나온다. 그래 아빠왔어 하고 안아주려는데 엄마는 없네. 하면서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난 왜 급하게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