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얘기하는 것만이 우리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한 공간에 머물며 같은 공기를 나누고 눈을 맞추는 일. 엎어 둔 핸드폰으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자신의 세상이라 말해 주는 것. 그래서 나는 커피를 한 잔씩 놓고 핸드폰을 바라보는 두 눈이 서운했고, 마주 앉은 채로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주고받는 음성이 서러웠다.
떨어져 있을 때면 주고받는 말풍선의 숫자가 우정의 총량이라도 되는 양, 영양가 없는 연락에 집착하기도 했다. 며칠씩 연락 한 통 없을 때면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핸드폰을 바라보던 두 눈이, 꾹 다물린 내 입을 앞에 두고도 보이지 않는 음성에 폭소하던 그녀가 떠올라 관계의 농도를 계산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렇게 멋대로 실연하고 또 재회하는 일방적인 함께를 우정으로 부르던 여름이 있었다.
문득 맞은편에 시선이 닿았다. 녹아내린 얼음에 흥건해진 유리컵과 작은 화면에 집중한 두 눈. 언제부터 체온을 느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교차되는 시선에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까. 핸드폰 속 대화 목록을 살펴보면 몇 주 전으로 그친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우정이 반감된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제 내게 우리란 그곳에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해도, 튼튼한 뿌리를 내릴 때까지 돌봐야만 할 풋내 나는 관계에 잠시 눈을 돌리더라도 여기, 지금, 변함없이 우리라는 것.
통화 중인 그녀의 잔 아래 맺힌 물기를 냅킨으로 닦아 주고, 주고받는 가벼운 눈짓. 선풍기 하나를 회전해 두고 잠시 각자가 되어 사색하다가도 떠내려가기 전에 서로에게로 재회하는 너와 나.
각자일 수 있는 함께야말로 우리다. 각자로도 우리일 수 있는 애정이야말로 우정이다. 농익은 관계는 돌아온 계절을 알리는 상징처럼, 각자의 삶에 알맞은 철마다 우리로 맺힌다.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더 이상 영양가 없는 메시지를 무작정 주고받지 않지만, 시시콜콜 웃고 떠들다가도 서로가 모르는 역할에 몰입하느라 며칠씩 대화창을 공백으로 채우기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공백의 틈에 가득한 우정은 우리만이 볼 수 있다. 다시 때가 오면 한 공간에 모이고, 그렇게 함께인 채로 우리이다가 또 각자인 채로 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