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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Aug 20. 2023

사랑하는 눈물


 우는 사람이 지는 거야.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경쟁과 해답의 시대에 눈물은 가벼워졌다. 대화 중 끼어든 눈물은 상대의 말문을 막거나 얕은 정당성을 강제한다. 그만한 이유로 설명되는 눈물은 다른 사람의 눈물까지 야기하지만 그렇지 못한 눈물은 보다 큰 야유에 잡아먹힌다.


 제멋대로 구겨지는 얼굴, 그만큼이나 엉망진창이 된 음성. 스스로에게도 추한 것들은 같은 이유로 반드시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다. 시선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관망하고자 하는 내게 눈물은 가장 성가신 것 중에 하나가 됐다.

 

 눈물은 매달려 있던 속내와 함께 추락했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누군가의 손등에 스며들었다. 아,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는 눈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랑하는 것보다는 미워하는 게 쉬웠다. 농도에 상관없이 모든 눈물을 미워했다. 기쁨의 눈물은 과장이라고, 슬픔의 눈물은 미성숙이라고. 눈물에 자유로운 사람을 그렇게 투기했다.


 스스로가 가장 미웠던 때 나는 가장 잘 울었다. 어차피 미운 것 조금 더 미워지면 어때. 억울하면 울고 기뻐도 울었다. 수문이 열릴 때면 저항 없이 쏟아냈다. 시작은 자기혐오의 표출이었을지언정 그 미운 얼굴을 닦아낼 때면 도리어 짧은 해방을 느꼈다.

 고여 있던 웅덩이는 무거운 혐오였지만 전부 쏟아낸 뒤에는 그저 닦아 훔칠 수 있는, 가벼이 증발하고 마는 수분에 불과했다. 부산된 것들이 눈물과 함께 증발했을 때, 마른 손 위에는 감정의 핵만이 남았다.


 쉽게 우는 사람이 된 뒤로 느낀 것은 흘려보내지 않고서야 비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제때에 흘려보내지 못한 나는 수용 범위 이상의 눈물을 속에 담고 찰랑댔다. 수위를 넘어버린 웅덩이는 작은 흔들림 하나에도 넘칠 수밖에 없어서, 젖은 두 발을 찰박대며 걸었다. 가장 미워하는 것을 가득 품고 있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충분히 흘려보낼 때면 눈물의 탄성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가장 미운 나를 조금씩 이해하며 화해해 나가는 것, 눈물은 나와의 우정을 쌓는 탄성이었다.


 이제는 울 수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눈물은 끝나 버린 감정과 욕망에 범람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회상만으로도 흘러넘치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고여 있는 것조차 알 수 없는 눈물이 있다.

 해가 갈수록 울어 버릴 정도로 간절한 것들은 줄어들지만 떠올릴 때마다 축축해지고 마는 것들은 여전하다. 나를 울게 하는 것. 가장 추한 모습으로 떼쓰게 하는 것. 사람은 이런 것들로 산다. 세상은 이처럼 종종 내가 사랑하지 못한 것들이 나를 살게 하는 아이러니의 주무대였다.


 이제는 눈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남들의 눈에는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 젖은 채로 구겨진 얼굴을 동경한다. 소중한 사람의 우는 얼굴에 안심한다. 저만큼이나 간절할 수 있구나. 다시 일어날 힘이 있구나.


 기꺼이 우는 얼굴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주어진 마음이 충분한 사람이다. 울지 않는 삶보다는 우는 삶이 낫다. 건조한 삶보다는 젖은 삶이 낫다.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는 간절한 것이 낫다. 고인 채로 멎을 수는 없다. 흘러가는 삶만이 또 하루를 살게 한다.

 태초의 우리는 울음으로 시작을 알렸다. 폐에 가득 찬 양수를 토해내고 우렁차게 호흡했다. 그렇게 토해낼 수 있다면 다시 호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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