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장소와 시간이 둘째와 셋째, 넷째 정도라면 알맞은 용량의 질투는 필수적이다. 모든 시작의 경계 직전, 그곳에 서서 몸을 푸는 행위란 질투를 수집하는 일이다.
푹 빠져 읽었던 책을 펼쳐 들고 세모눈을 뜬다. 정신력을 도닥이며 전날 그어 둔 밑줄을 들이켰다. 당신처럼 전시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질투를 줍는다. 사랑하는 그녀의 일상을 훔쳐본다. 당신이 일상이라 부르는 것들을 가지지 못해서 질투를 줍는다. 저 사람은 만취해 뒹굴었던 일도 마이크를 쥐고 떠드는데, 당신이라는 이유로 저런 시시콜콜한 것도 지향점이 되는데, 한 편 읽게들 해 달라고 아우성이라는데.......
이 정도면 됐다. 적정 용량의 질투를 채웠다면 과감히 수확지를 떠난다. 용량 이상을 넘어선 질투는 종종 자기혐오, 연민과 같은 부작용을 야기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묵직한 시샘으로 뜨끈해진 채 백지를 쏘아본다. 공백이 빼곡하게 그을었다.
매번 질투는 내 등을 떠밀었다. 앞으로 나설 줄 모르는 비겁한 시샘은 앞에서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떠밀 줄이나 알았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동력으로 두툼한 경계를 밟는다.
어떤 사람은 너무 사랑해서 미웠다. 그녀의 현재가 내 간절함이어서, 그녀에게 강제된 마감과 섹시한 괴로움을, 불특정 다수를 초대하는 그녀를, 그녀를 기다리는 다수의 나를, 과감한 셀피를, 징그러운 끈기를, 온몸으로 시니컬한 여성이 남몰래 접어 놓은 책의 모퉁이를. 그 모든 것을 너무 사랑해서 미웠다.
읽고 또 읽고, 긋고 또 그어 너덜해진 그녀의 책들을 품에 안고, 사랑하는 그녀의 앞에 선 날. 모든 표지 위에 그녀의 지문을 찍었다. 너무 좋아해요. 꼭 만나고 싶었어요. 수줍게 고백하고 포옹을 나누었다. 들뜬 마음으로 등을 돌리면 나만큼이나 발간 뺨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그녀의 글과, 그녀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하나하나 눈을 맞추는 그녀를 사랑해서, 그들의 사랑을 사랑해서, 그녀가 밉다.
내 곁에는 수많은 그녀가 있다. 대담해서, 다정해서, 사랑하고 있어서, 이별해서, 독해서, 손가락이 예뻐서. 비겁한 시샘들은 그때마다 내 어깨를 쿡쿡 찔렀다. 너 질투하지? 시샘하지? 지금 그 애가 밉지?
실은 그 애를 사랑하지? 그럴 때면 나는 못 들은 척 어깨를 털어내며 그녀에게 사랑을 뱉었다. 꼭 사랑만 하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시샘은 꽁쳐 두고 사랑만 소모했다.
사랑을 인정한 질투는 사랑스럽다. 이런 미움은 등을 돌리게 하는 불같은 부정과는 달랐다. 사랑으로 대변하는 것이 이질적이지 않은 미움. 준비 운동을 끝낸 나는 그런 미움을 소비한다. 미운 그녀들을 곱씹고, 비축해 덩치를 키운다. 조금 더 강한 힘으로 내 등을 떠밀어 주기를. 사랑할 때보다 뜨거워진 체온으로 공백을 빼곡하게 그을린다. 이것은 그녀를 미워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왜 사랑만 고백해야 해?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지 않는데. 언젠가는 나의 그녀들 앞에서 애정보다 농도 짙은 이 사랑을, 미움을, 질투를 실토하는 나를 계획해 본다.
"아, 질투 나! 미워 죽겠어!"
좋아해. 동경해. 너를 닮고 싶어. 너는 내 꿈의 일부분이야. 그러니까, 당신을 너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