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은 Apr 29. 2024

방심하는 사랑

 사랑에 빠진 방은 엉망진창이다.

 그가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 혀를 찼을 테지. 너같이 천방지축인 애랑은 커피를 나눠 마실 수 없어, 내 하얀 셔츠에 커피 얼룩이 잔뜩 튈 것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그를 그려 보는 그녀는 샐쭉댄다. 입꼬리를 잡아 내리는 상상따위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한편에 걸어 두고도 뭔가 부족했다. 거추장스럽던 시간을 견디며 길렀던 앞머리도 대뜸 자른다. 아끼던 팩도 꺼내 붙이고, 벽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다리를 쭉 뻗어 그간 무심하던 혈액순환까지 챙긴다. 24 시간의 준비. 넘실대는 사랑을 옴폭한 손바닥에 가둬 참방참방 묻히는 시간이다. 대뜸 몸을 던져 버리면 위험할 테니까.




어떤 사건은 방심해서 일어난 거라잖아. 그러니까 사랑도……

방심이다?

그렇지. 방심한 거지.

넌 방심했었니?


 어쩌면? 그렇게 답한 그가 요거트 뚜껑을 핥아먹는다. 스푼만 뒤적대는 나를 힐끔거리던 그가 변명한다. 방심이라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잖아. 아, 젠장. 러그 위로 떨어진 요거트를 휴지로 닦아 훔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다고 말한 적 없어. 단지 나는,


긴장했었지. 24 시간 동안.

어?

바짝 쫄아 있었어. 배가 막 꼬일 정도로.


 널 만나는 장소에서는 화장실 위치부터 파악했어야 했을 정도였다니까. 그가 물고 있던 숟가락을 들어 화장실 방향을 가르킨다. 알지, 저기인 것? 필요 없어. 나 지금 방심하고 있거든. 방심이 곧 사랑이라 말하는 그는 아마 고민하고 있을 테다. 그럼 이전에는 사랑이 아니었어? 그렇게 묻고 싶겠지.



 까다롭게 고수했던 머리 스타일도 바꿔 버리던 약속 하루 전. 위아래 짝을 맞춘 속옷과 구강 스프레이의 발칙함. 입을 최대로 벌리지 않아도 좋을 메뉴와 요거트 뚜껑은 숟가락으로 훑어 먹던 내숭.


 먼지 한 톨 보일 때마다 테이프를 돌돌 밀던 그는 이제 러그에 흘린 음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마냥 훔쳐 닦고, 씻지 않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던 당신은 이제 가방까지 둘러맨 채로 침대 위로 엎어진다. 향긋한 디퓨저 향 대신 툭 치면 폴폴 올라오는 먼지와 하루 끝까지 미뤄 두는 설거지는 방심해서 사랑에 빠졌다던 그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우리는 긴장했던 것이다. 사랑은 긴장으로 시작됐다.


 방심은 애정의 지속이다. 요거트 뚜껑을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목이 늘어난 애착 티셔츠를 입고 널브러져 있는 나와 너. 패티가 두툼한 햄버거를 마주본 채 욱여넣으며, 뼈에 붙은 살을 야무지게 발라 먹는 우리.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빨아먹고, 감지 않은 머리를 들이밀며, 머리 좀 감겨 주면 안 돼? 농담하는 당신과 나. 뒤집어 벗은 양말과 허물처럼 벗어던진 우리의 외출복.


 사랑은 긴장으로 시작되고 방심으로 지속된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에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로. 짝을 맞춘 속옷에서 늘어난 고무줄로. 향수 대신 살내음으로. 그러니까 나는 긴장으로 사랑했고, 사랑해서 방심하는 거야. 음, 그 둘이 다른 말이야? 음… 그러니까……


닭발 먹을래?

주먹밥도 같이 시켜.


 빨갛고 불편한 음식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이제 막 발 담갔을 때라면 감히 떠올리지도 못했을 금기의 메뉴로, 나는 지금 이렇게 푹 빠져 있다며. 우리는 잔뜩 긴장한 사랑을 했고, 마음껏 방심한 채로 깊게 빠져 버렸다고.


작가의 이전글 미움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