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 철을 안쓰러워했다. 자주 아파서, 어쩐지 체중이 자꾸 줄어서, 천장을 기어서,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추위에 작아져서, 분투하는 둘째라, 정을 그리워하는 어린애였어서, 누군가에게 미움받아서, 듬직해서······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그랬다.
그만큼이나 많은 이유로 그를 미워했다. 안쓰러워하는 까닭에 비해 미움의 근거는 거친 냄새나 감촉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의 딸들은 덩달아 촉감하기 쉬웠다.
우리는 미워하는데 함께인 어른들이 어려웠다. 사랑하며 함께인 데에는 이유가 부재했는데, 미워하며 함께인 데에는 까닭이 필요했다. 그건 꼭 죄목이 있는 구속 같았다. 어른은 다 죄인 같았다.
최근 크게 아팠던 철은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팔고, 술을 끊었다. 술은 이제 독배일 뿐이고, 시원하게 굉음하며 흔들리는 몸체는 버겁다고 했다. 무슨 낙이 있겠니. 현은 한숨처럼 안타까워했다. 그것들을 전부 용서한 건지, 용서하려는 노력이었을지.
치료실에 근무하면서는 쫓던 그녀들과 쫓는 그들을 자주 마주친다. 아버님, 여기는 다른 어머님들도 계셔서요. "그래! 뭘 또 졸졸 따라오고 있어. 밖에 좀 앉아 있어." 그녀의 구박에 꼬리 내린 그는 그녀가 들어간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오매불망을 아는 나는 방이 비었을 때면 그들에게도 문을 개방해 주고는 했다. 다른 분들 오실 때까지 들어와서 같이 계셔도 돼요. 안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뭣 하러 들어와. 거기 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몸부터 밀어 넣는다. 아이, 왜애. 같이 있어도 된다잖어. 어휴, 징그럽그로······.
그런가 하면 처의 뺨에서 손이 떨어질 줄 모르는 남자도 있다. 얇은 가벽 뒤에 서 있자면 창호지를 콕 뚫은 것처럼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손길이다. 투박한 손바닥이 대수로운 뺨은 그저 눈을 감고 말한다. 할배, 좀 나가 있어. 나 한숨 좀 잘라니까는. 먹고 싶은 건 없나? 어휴, 있음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아버님이 정말 다정하신 것 같아요. 뺨도 막 쓰담쓰담 그러구."
"다정하기는. 젊을 때 죄지은 게 많아서 저러는 기다. 내가 확 쫓아내 버릴까 봐서."
"아버님이 고생 많이 시키셨어요?"
"그러엄. 저 양반이 얼마나 못된 양반인데. 빤스만 입혀 가지구 확 쫓아내 버리려다가 말았어."
확 쫓아내 버리지 그러셨어요. 어휴, 그래도 불쌍해서 어째 그래······. 나 없음 피죽도 못 얻어먹고 다닐 양반이여. 젊을 때는 버럭버럭 호통도 치고 그러드마는, 작년에 엎어진 뒤로는 고집이 팍 꺾여 버렸지. 원망으로 시작해 애틋하게 끝맺어진 자신을 모를 그는 문 밖에서 꾸벅댄다.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그녀는 지난한 고집을 용서했을까. 어쩐지 그녀의 한숨을 킁킁 대면 묻은 미움을 알 것 같기도 한데.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아버님 안 계셔서 심심하시겠어요. 심심하기는, 없으니 좋기만 하구먼. 자꾸 옆에 붙어서 쓸데없는 얘기나 삘삘 해 쌌고. 귀찮아 죽겠다. 젊을 때부터 나를 그렇게 괴롭히드니마는. 아이구, 누군가 했드마는 같은 방 사람이네. 그짝 아저씨도 말이 그렇게 많나? 그러엄, 원체가 말도 많구, 탈도 많구······. 안부차 건넨 말이 불씨가 되어 온통 집안 남자들의 뒷담화로 타오른다.
"내가 그 양반이 싼 똥 치우느라고 일만 하다 연골이 다 닳아 버린 것 아니여."
"한평생 고맙다는 소리 한 번 없다. 더 내놓아라 호통만 안 치면 다행이지."
"일은 또 을매나 크게 벌려대는지, 남자가 쪼잔하면 그것두 못 쓰지만서두 우리 아저씨는 심혀."
그려도 뭐··· 우리 아저씨 없었음 이럴 때 혼자 워쨌을까 싶다. 그치, 자식들한테 아픈 소리 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먹고살기 바쁜 것들 매일 불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즈그들한테 오라고는 해도 가면 내가 불편해서 안 돼. 고럼 고럼. 작년에는 우리 아저씨 수술하고서 내가 병수발 다 들었잖어. 그렇게 밉더니마는 그 목청 다 어디 갔는지 골골거리는 것 보면 속상허드라구. 저 양반도 지 마누라 불쌍키는 한지 찍소리 안 하구 휠체어 밀고 댕기네. 근데, 아가씨는 결혼했나?
"아가씨, 잘 들으래이. 남자들 고생시키는 건 또옥같다. 그래도 잠 많은 남자랑은 절대로 살지 말어. 잠 많은 남자는 하등 쓸모가 없어. 저녁 먹구 수저만 내려놓으면 고마 쿨쿨대는데 뭘 하겄어."
"와아······ 어머니, 진짜 맵다. 매워."
연민으로 서로의 지금을 빌린다는 매콤한 그녀들. 거칠고 투박한 미움을 온기로 마찰하면 민둥해질 수 있는 걸까. 분명한 인과로 타당했던 원망의 시간들은 무엇을 통과해 영원한 결속으로 귀결되는지. 미운 그가 시간에 고개 숙이는 일이 그녀들에게는 그토록 안타깝다니. 솔직히 그냥··· 꼬시지 않나?
당시에 그 미움을 함께 촉각 했던 딸들은 여전히 그 감촉을 기억하는데. 한평생 그만 쫓던 그녀를 쫓는, 쫓기던 그와 함께하는 노년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에 닿아 있고, 그저 연민이라기에는 조금 더 편파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쯤 현과 철은 각자일 줄 알았다. 하지만 되려 현과 철은 부쩍 함께다.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갔다며 찍은 사진을 보내 주거나, 너희 아빠 좀 보라며 유쾌한 장면을 찍어 전송한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그의 뒷모습이 있고, 그가 찍은 그녀가 있고, 함께 찍은 셀카가 있다. 언젠가 철은 자신이 찍은 어린 현을 함께 보며 짓궂게 말했다. "너희 엄마 되게 귀여웠다. 쪼만한 게 오빠야, 오빠야 하면서 따라다녔던 게 이제는 오빠야 말도 안 듣고."
깜찍한 그녀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다. 나는 발음하기도 낯선 시댁에 몸을 담고. 아직은 질색하고 싶은 새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누구네 엄마로 통하고. 그 새댁은 남편도 들어오지 않는 새벽이면 엄마에게 전화 걸어 울었다는데. 결국 각자가 됐다가도 다시 함께가 됐다는데. 지금까지도 쭉 함께라는데. 그 시절의 원망은 내 것이 아니어도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앞서 걷다 뒤를 보면 손을 잡고 있는 현과 철을 자주 목격했다. 맹세하는 영원은 얼룩과 빗물을 함께 가약하는 걸까. 정말로 거친 미움은 맞잡은 손에서 마모될까. 하지만 가장 가까운 타인의 타당한 원망은 그들만 아는 투명한 사랑보다 훨씬 선명해서 나는 홀로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고래들은 화해하면 그만이라지만 터진 새우 등은 왜 아무도 몰라 주느냐고. 나는 도대체 누구와 화해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너희 아빠가 뭐 주문했는지 아나?"
"뭐 주문했는데?"
"망원경!"
뭐··· 엄마 공연 보러 갔을 때 망원경으로 보라고? 그래, 멀리서도 쭉 당겨서 보라고. 그게 뭐야. 깔깔 웃는 우리 앞에서 철은 멋쩍게 웃는다. "쪼만해 가지고 발꿈치 들고 성질내는 것 보면 신경 쓰여서 안 되겠다. 의자 구해 준다고 쎄가 빠지고." 어쨌거나 둘은 나의 공백마다 함께를 계획하고 있었다.
여기 아빠랑 왔던 곳인데 맛있더라. 거기 너희 아빠랑 갔던 곳인데 좋더라. 이건 너희 아빠랑 보고 왔는데, 노래 너무 잘하더라. 거기 너희 아빠랑 가 보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현과 철의 시간이 늘어난다. 그 시간은 내가 세상에 없던 때의 현과 철을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철의 조수석이 익숙한 현과, 몸이 아플 때면 철이 만든 코다리찜을 찾는 현이 모난 내 미움을 자꾸자꾸 쓰다듬는다.
그녀들의 미움을 몰래 감촉하던 딸들은 자라서 그녀의 미움을 마주 보고 앉는다. 철은 도대체 왜 그래? 현은 다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철이 현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 이르면 다음 날, 늦어도 며칠 뒤면 철은 이상한 농담을 하고 현은 눈물까지 닦아가며 웃는다. 너희 아빠 말하는 것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나 싶다. 너무 웃기지 않나? 너무 가까워서 울리기 쉽고 또 웃기기는 더 쉬운 사이.
부부는 소음이고, 사랑의 최종 진화형은 편파적인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미움을 설명해야 할 때면 차라리 도망쳐 버리는 나는 아직도 미워하면서 함께인 어른들을 잘 모르겠지만, 때로는 죄인 같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울퉁불퉁한 미움처럼 주름진 손을 붙잡고 마찰하는 화해를 알 것 같다.
동생과 나, 현과 철이 함께 걸어갈 때면 나는 조금 일부러 동생과 함께 앞서 걷는다. 맞잡은 두 그림자가 길게 뻗어 앞선 우리를 감싸 안을 때면 나는 그걸 화해라고 부르기로 했다. 현과 철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그걸 용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같이늙어가면서 흰머리보면 맘찡하고
아무것도못하는걸보면 안쓰럽고
하루하루 몸이어떤지 신경안쓰이게 옆눈으로살피는것도 나의 하루일상이되어버렸네
여보 좀더힘네고 홧팅해요
강하디강한사람이 이렇게 힘들어하는걸보니 맘이 찢어지느것
같다 좀더힘내고 이겨내봅시다
여보 홧팅^^]
<2022년 5 월 현의 인스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