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현실세계관 33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수년 전 고양이들에게 당한 불쾌한 일로 인해 그들을 향한 나의 다짐(개냥이를 부탁해 - 고양이 01, 02 참조)은 시간이 지나자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쯤의 일이다.
단체 채팅방에서 대뜸 아는 지인이 고양이를 분양받을 사람을 찾았었다. 이야길 들어보니 자신의 고양이가 아닌 지인의 회사에서 기르던 길냥이가 출산을 했지만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바람에 급하게 분양희망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채팅방에는 고양이를 원하는 이가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넌지시 따로 물어봤다. 혹시 고양이들 중에 병이 들거나 문제가 있어서 분양이 안 되는 상황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달라.
그 지인은 이 말을 단단히 오해했는지 우선순위로 분양을 받게 해 줬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나도 이날은 왜 그런 걸 물어봤는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길냥이의 사연을 들은 뒤 없었던 측은함이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삶의 변화가 필요했던 걸까?
아마도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이든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사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은 그들을 중심으로 바뀔 수 없다. 이는 필연적이다. 나처럼 자신의 영역과 루틴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그것 만큼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내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내 삶은 이제 내가 전부가 아니다. 다른 생명체들의 삶도 같은 공간 안에 공존해 있으며 이들에게 희로애락(?)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
여하튼 선뜻하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분양을 결정했다.
한 번 결정한 일은 도로 물릴 수 없었다. 물리는 순간 파양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제일 최악의 인간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파양이란 사실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