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같은 사유 따윈 없음
두 세력이 전쟁했을 때 종전 후 누가 사과하는가? 먼저 공격한 쪽? 더 큰 피해를 준 쪽? 윤리적이지 못한 쪽? 힘이 센 쪽? 혹은 약한 쪽? 내가 보기엔 모두 의미 없고 결국 전쟁에서 진 쪽이 사과를 강요받는 게 세상 이치인 듯하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났으니 천만다행이지, 일본이 승리라도 했으면 조센징은 감히 독립운동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피눈물을 흘리며 두고두고 사죄를 드려야 했을 것이다.
2024년 의료 대란? 대란이라는 게 정말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당장 체감 못 한 국민이 많을 것이나, 정부의 이상한 헛짓거리 때문에 결국 정권까지 무너졌다. 그런데 지금 무조건 사과하라고 등 떠밀리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가? 고작 일개 의대생, 전공의 나부랭이들이다.
그럼, 일단 누가 이겼고 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은가.
정부는 절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명분 싸움에선 잘못해서 사과하는 게 아니다. 먼저 사과하는 놈이 잘못을 뒤집어쓰게 된다. 의사단체(원로원)도 치사하게 힘없는 학생들에게 고개 숙이라고 찍어 누르는 모양새이니 젊은 의사들은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사이다만을 위해 패잔병인 의대생, 전공의를 다 참수하고 효수하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큰 손해가 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봐주기도 싫으니 '어디 너 하는 거 봐서'라는 느낌으로 사과하라니 어쩌니 하면서 뒷수습을 어른끼리 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젊은이들의 의견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는 거다.
결국은 정부가 '져주는 척'하면서 (이미 얻을 것 많이 가져갔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대부분 (전부는 좀 어렵지 않을까) 복귀되긴 할 건데, 이번 사태로 세대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져서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지금 기득권 의사들과 새로운 젊은 의사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다른 집단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의료 체계도 대격변이 예상되고... 정부가 의료 '대란'이라기 보단 '혁신'이라고 선동할, 그러나 결국은 똑같은 큰 변화가 올 것이니 의사나 환자나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다.
이젠 젊지 않은 낀세대 선배인 나는 그저 이번에 고생한 젊은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