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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대박 난 재벌 4세는 의대 안 간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알잖아?

by 남산

#1
이번 수능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이건희 손자의 수능 대박과 '그가 어디로 지원했냐?'인 듯하다. 무려 수능을 한 문제 틀렸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의대를 지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고, 나도 그랬다. 그는 서울대 경영대로 갔다고 한다. 가업을 승계하셔야 할 테니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잘 가신 것 같다. 하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 다른 잡생각이 들었다.

#2
중요한 건 사람들도 안다는 거다. 그 정도 부를 이미 가지고 있으면 의사 '따윈' 안 하는 게 좋다는 것을.

왜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은 의사라는 직업을 기피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의료 소비자'들이 평소 의사를 어떤 이미지로 생각하는지 자기 성찰이 대단히 잘 되어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모든 직업이 저마다 의미가 있는 만큼 의사도 분명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매우 전문적이면서 숭고한 직업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과연 의사를 그렇게 생각해 주냐는 건 다른 문제이다.

가지고 있는 게 많을수록 버는 것보다 잃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하기까지 하면 정말 살얼음을 걷는 느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재벌가에서 의사는 정말 최악의 직업일 듯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날 만날 수 있는 환경, 그런데도 불필요한 원한을 너무 쉽게 살 수 있는 피곤한 직업이니까. 아무리 봐도 재벌 4세가 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즉, 의사는 쥐뿔도 없이 태어나 오직 능력만 가지고 치열하고 처절하게 바득바득 기어오르는 인간에게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쟁이 과열되어서 문제라는 입시 제도를 왜 고칠 수 없는지도 다소 이해할 수 있다. 애초 그런 인간이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직업을 가지고 그렇고 그렇게 살게끔 흘러가는데,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에다 억지로 맞추니 이상한 정책만 나오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3
재벌 4세보단 그의 친구(맞나?)가 궁금하다. 학교, 학원 '의대반' 친구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이보다 분명 내가 더 치열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공부도 내가 더 잘해야 세상이 그나마 공평한 거 아닌가? 근데 공부도 재벌 4세가 더 잘해... 그런데도 의사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해... 나는 그렇게나 들어가고 싶어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인생의 목표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싶다. 심지어 재벌 4세는 잘못한 것조차 하나도 없으니!

그래도 재벌 4세의 친구 정도 되면 그들도 제법 좀 하는 집안일 거라고, 그러니 걱정할 거 없다고 상상하는 게 그나마 우울감을 줄이는 위안이 되려나...

#4
전문직도 위에서 보기엔 그저 '머슴 나부랭이'일뿐이라는 집단 우울증이 의사 사이에 원래도 있긴 했지만,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늘 위를 바라봤기 때문에 계층 사다리가 거의 다 치워진 현 상황에서 더욱 불합리와 좌절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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