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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텃밭

이제야 알겠네

by 나야

배추김치 새로 담갔는데, 가지러 올래?


잔뜩 흐린 오후,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의 경쾌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시든 배추처럼 드러누워 있던 나는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켰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친정집은 서너 번만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공기의 음계가 달라진다. 도미솔의 '솔'톤으로 반겨주는 엄마 덕분이다.


김장김치가 시어져 갈 때쯤 입맛 살려주는 엄마표 새김치


설탕 대신 사과랑 배를 갈아 넣었어.

고춧가루 대신 마른 고추를 썼더니,

어때, 색깔도 깔끔하지?


식구들, 특히 사위의 건강을 생각해서 양념에도 각별히 신경 쓰셨다는 말씀인데 나는 그저 한 귀로 흘려듣고 만다.


간이 슴슴한가 먹어볼래?


엄마의 눈에서 새김치를 얼른 맛 보여주고픈 마음이 반짝거렸다. 그럼에는 인정머리 없는 딸래미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낮은 '도' 음정으로)


괜찮아요, 방금 양치했어.


안 먹어봐도 되겠어?


딱 봐도 맛있겠구만 뭘, 얼른 싸주세요, 가봐야 돼.




몇 해 전, 남편이 암수술을 받았을 때도 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넋이 반쯤 나가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다독인 것도, 집안 살림을 도맡아주신 것도 엄마였다.


니가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 마음 크게 먹고.


당시 수술실 밖에서 오만가지 불안이 머릿속을 스쳐갈 때, 엄마의 말이 동아줄이 되었다. 나를 지탱해주었다. 한데 나중에 딸아이로부터 들은 얘기는 조금 달랐다.


할머니가 그때 얼마나 우셨는지 몰라. 설거지하다가도 울고, 빨래 널다가도 울고


갑자기?


응, 우리 나서방 불쌍해서 어쩌냐면서 대성통곡을 하셨다니까?




맞벌이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엄마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래저래 갚아야 할 은혜가 태산 같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달아날 궁리부터 한다. 무한반복되는 잔소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잔머리를 무진장 굴리면서.


실제로 그녀 앞에서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알겠어요'다. 뭘 알았다는 건지, 세상만사 도통 모르는 것 천지인 주제에 엄마의 말이 조금만 길어진다 싶으면 냉큼 '알겠어요' 벽을 세운다. 그 말이 나오면 엄마가 서둘러 뭔가를 싸주면서 대화가 종료된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잔소리는 대부분 걱정에서 비롯되는데, 얼마 전부터 사위의 건강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약 5조 9천억 개의 걱정을 달고 사는 엄마가 요즘 자주 토로하는 고민거리는 텃밭농사. 사실 지리적인 위치부터가 상당히 불리하다. 하필이면 시골 동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탓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들과 나눠먹는 고구마 순


그들이 남의 밭농사에 이러쿵저러쿵 한 마디씩 얹을 때마다 엄마의 귀에는 스트레스가 들러붙는다. 마지막 화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누구나 쏟아내야 할 하소연의 총량이 있으니까.


- 앞집에서 그러는데 우리 밭에 잡초가 많아서 모기가 끓는다는데?


- 마늘 종자를 너무 깊이 심으면 싹이 안 난대. 다시 파내야 하나?


- 옆집은 쪽파가 실한데 우리 건 비실비실 왜 이 모양이냐? 뿌리가 잘못됐나?


텃밭의 채소 종류만큼이나 고민도 다양한데, 언제부턴가 내 귀에는 그 모든 말들이 '힘들다' 소리로 들려왔다. 엄마도 이제 기력이 쇠하셨고, 아무리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도 혼자 감당하기 벅찬 것이 당연하니까.


게다가 주말마다 일을 거들던 사위가 암수술을 받은 뒤로 농사일은 오롯이 늙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딸이 밭일에 능한 것도 아니다. 변명 같지만 농사일이 요구하는 근육은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이나 일터에서 쓰는 근육과는 차원이 달랐다. 호기롭게 덤볐던 나는 고랑 하나도 제대로 파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일도 못하면서 갓 올라오는 새순을 밟아서 다 망쳤다는 타박과 함께.


어느새 텃밭농사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고 차라리 밭을 팔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아직은 농사일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데다 멀쩡한 땅을 왜 놀릴 거냐고.

여름 내내 식탁에 올라왔던 가지


결론은 힘에 부치지 않을 정도로만, 쉬엄쉬엄 농사를 계속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로도 한참 동안 나는 텃밭에 무심했다. 말이 좋아 쉬엄쉬엄이지, 날마다 무섭게 올라오는 잡초만 뽑기에도 허리가 휘어진다는 것을, 드러나지 않는 농사일의 수고로움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러다 이번 추석 연휴에 모처럼 텃밭을 둘러보았다. 가지, 풋고추, 부추, 대파, 쪽파 등의 작물들이 몇 포기씩 올망졸망 자리 잡고 있었다. 규모는 작아도 없는 게 없는 채소 백화점에는 엄마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틈날 때마다 엎드려 풀을 매고 흙을 고르며 씨앗을 뿌리고 일구었을 그녀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그중에서도 노란 호박꽃이 탐스러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특유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저 안에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호박 농사가 잘 되면 복이 온대잖아.

너희도 잘 풀릴 거다.

풀 죽을 필요 없어.

세상 다 산 것도 아닌데 뭐.

잘 될 거야!



순간 호박꽃을 들여다보던 눈이 시큰거렸다. 이 나이 먹도록 엄마의 노고를 거름처럼 받아먹고 살아왔구나.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혼자 고달픈 줄 알았다.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숱한 계절동안 뒤돌아 눈물 훔쳤을 엄마의 애끓는 심정을 비로소 깨우치며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엄마가 평생 노심초사하며 키운 텃밭이 바로 나였음을 이제야 '알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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