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내가 태어났다. 어떤 기점을 기준으로 20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항생제도 마취제도 의사도 자동차도 티비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자아가 생기고 난 후, 과거의 생활 행태를 보면 오늘날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딱 그정도였다. 여자애가 교육받을 이유없다고 고등학교 지원을 거부당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는 그저, 현재의 나와 비교했을 때 안도감을 주는 비교대상 정도였다. 역사라는 거추장스러운 학문과 시험과목은 암기대상일 뿐이었다. 첨성대 밖에 기억나지 않는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를 비교하며 왜 이런 것들을 외워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역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는 어른들이 부러웠다. 그저 돈 벌고 맛있는거 먹으며 돈쓰며 살아가는 모습이 더 유익하고 내가 얻을 것이 많아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역사는. 텍스트 이상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모두가 단꿈에 접어들 시각.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11시를 기점으로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시민들은 놀라 국회로 결집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속속 모여 의결권을 행사했다. 여당의 눈엣가시였던 지식인들은 체포대상이 될것을 예상했고 집 밖 체포조가 대기하고 있었다. 상황을 기록하려던 기자를 결박되었고 시민들과 탱크는 대치했다. 이재명 후보의 사무실은 체포조가 점령했고 하늘에는 헬기가 날아다녔다.
이를 들은 1980년대 광주기억을 가진 어르신들은 병원으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경찰서가 아닌 병원으로 간 것은 국가권력에 대한 몸서리칠 잔혹한 기억 때문이겠지. 고문 기억을 가진 정치인사는 손발이 떨리고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고 한다. 속보를 확인한 시민들은 그날의 기억으로 잠못 이루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약 4시간 가까이의 지리멸렬한 판단으로 대한민국은 커다란 혼란에 휩싸였고 결국 분열되었다. 둘로 갈라진 대한민국은 관군과 농민들이 싸우던 시절처럼,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던 6.25때처럼, 경찰이 학생을 진압하던 때처럼 또 다시 서로를 공격했다.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사항이 깨졌다. 어느 우둔한 사람 한 명이 한 나라의 기개 높은 정신을 꺾어버렸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를 학습했다. 배웠고 정신에 새겼다.
시민들은 탱크를 막아섰고 기자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군인들은 국회 앞에 서 진입을 저지하는 시민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저 몸으로 받아낼 뿐이었다. 한 아버지는 군인 아들에게 전화해 절대 폭력은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우둔한 그 인간을 민주적 절차로 끌어내렸다. 유혈이 낭자했던 광주 금남로 거리의 신음은 시대를 뛰어넘고 세월에 지지 않고 여전히 대한민국을 각성하게 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보지 않는다.
'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니? '
대신 다른 질문을 한다.
' 너가 살고 있는 그 시대는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 시대에서 너는 어떤 역사의 흐름을 따라 살고 있는가? '
시대적 상황이 다른 그때와 지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의미없는 행위이다. 대신 우리는 사고해야한다. 시대정신에 따라 맹렬하게 살아낸 그 분들처럼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한 개인인 나는 역사적흐름 속에서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인지. 손에는 출근길 교통카드가 들려있겠지만 머리는 저 높은 곳, 먼 곳의 지향점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