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의류학, 그리고 내가 쓸 글들에 대해.
나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편할 의사소통 방법일 그림/이미지보단 글이 편한 사람이다. 물론 글이 편하다고 해서 글을 아주 잘 쓴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내가 느끼기에 가장 편한 그 툴(tool)로 나와 내 전공, 그리고 내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들에 대해서 설명해보려 한다.
나는 학부 때는 의상디자인과 텍스타일 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고, 석사 땐 소재 과학을 공부한 후, 현재는 미국에서 물질문화와 직물사 박사과정 중으로,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의류, 즉 옷과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학도이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온 과정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의 나는 사실 더 이상 '디자이너'의 카테고리에는 들어가기 힘들다. 여전히 옷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지만, 디자이너가 하는 '예술적'작업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디자이너'라고 나 스스로를 명명한 까닭은, 사람들에게 내 전공이 의류학이라고 설명했을 때 가장 쉽게 이해하고 떠올리는 직업이 '패션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학문 분야들도 그렇지만, 의류학이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라는 한 가지 직업만이 전부인 학문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융복합 학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을 통해 이 사실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의류학이 단순히 옷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학문 또는 그러한 사람을 육성하는 교육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의류학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사실 큰 계기나 목표는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일 때문에 미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 IMF를 겪고 어려운 시기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모아 미국에 왔던 우리 가족은, 속히 말하는 "비행기 값 뽕을 뽑고 간다"는 심정으로 미국의 여러 곳을 알차게 경험하고 왔었다. 박물관, 미술관, 또는 유명한 관광지들을 둘러보면서 그 당시 들었던 생각은 '앞으로 한국이 세계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경쟁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 무엇이 있을까?'였다. 미국에는 없고 우리는 있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라고 생각했다. 주변 나라들과 구별되는 우리만 갖고 있는 우리만의 문화. 나는 거기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무엇인가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치르는 해에 문득, 예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드라마 '다모'에서 나왔던 한복이 떠올랐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3요소인 의, 식, 주는 문화를 이루는 데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니 의상학과에 가면 어렸을 적에 꾸었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의상디자인학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공부하게 된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패션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던 학생이었다. 보통 패션디자인, 의상디자인을 포함한 의류학 계열의 학과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옷에 관심이 많거나 좋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제로 같은 학번 동기들의 경우, 타과의 사람들이 보면 한눈에 "패디과"라고 바로 알아차릴 정도로 옷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타일도 좋고, 개성들도 강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들과는 온 이유 자체가 달랐던 "별종"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과공부가 잘 맞았던 "변종"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100% 비실기 전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였지만 실기 수업 위주의 커리큘럼이었는데,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나름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의 목표였던 한복 관련 수업보다는 우리가 오늘날 입고 있는 서양 복식이 주 교육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는 과정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었기에 지금까지 공부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초기의 목표였던 '문화'에 관련된 공부를 현 박사과정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선택이 아주 틀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내가 앞으로 중점적으로 쓰고자 하는 글들은 크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우선, 나의 주 전공분야인 '의류학'이란 학문 분야와 또 나를 이 분야로 이끌게 해 준 '문화'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들을 다루고자 한다. '의류학'은 내가 하고 있는 연구 분야를 비롯한, 이 학문분야를 실제 접하지 않고는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전반적인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가령 학과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의류학과/의상학과/패션디자인학과 등 비슷한 이름을 갖는 학과들의 차이는 무엇인지, 졸업 후 진로라던지 등과 같은 직업탐구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내가 학위과정을 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다양한 내용들을 함께 적어 내려갈 것이다. 반면, '문화'는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현상 전반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사실 내가 현재 문화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을 '전문적'이고, '학문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분석 및 서술하는 방법과는 많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문화이론 같은 거는 잘 모른다). 때문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만 해석한 것이기에 지극히 한 개인의 견해라는 점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나는 '문화'라고 명명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에 관심이 많지만 그래도 굳이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가장 크게는 '대중문화'와 '전통문화'가 있고, 나라별로는 한국, 미국,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다. 물론 더 세세하게 나눌 수 있겠지만, 그 부분은 앞으로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