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가는 내비게이션
지난 50년, 남겨야 할 것이 있었다면 '멘토'이다.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때로는 그 누군가 조차 찾지 못해서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 역시도 멘토를 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을 돌아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의 고통과 어려움 덕분에 멘토를 찾는 간절함이 되살아 났다.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치거나, 그럭저럭 성공의 길에 들어섰지만 부족한 에너지로 결국 실패를 경험하고, 이어지는 반복으로 다시 설 용기를 잃는 것은 정말 인생의 낙제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한다.
내 삶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고작 15년 정도 더 사셨으니 돌아보면 너무 빠른 것 같다.
비강암 수술을 여러 번 받고, 뇌로 옮겨진 암세포를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면도를 해드리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당시는 아버지가 그 상태로 더 사신다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큰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는 뇌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들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셨다. 그것도 너무 평온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전까지 15년간 이름이 아닌 큰 딸아이의 아범으로 불러주셨기에 조금은 생소했다.
거구에 체력도 매우 좋으셨던 터라 장수를 하실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가장 무서운 스트레스로 평생을 사셨다는 것을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아버지는 음악을 전공하셨다. 음대 졸업 후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그 순간과 상관없이 틈나면 많은 봉사 연주를 하셨다.
그 봉사는 세상에서의 상급보다는 하늘의 상급이 큰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에게 그 하늘의 상급을 주셨다. 그것은 고통에서 빠져나와서 편안하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소망을 들어주시는 것이었다.
숨겨 온 사실이 있다.
난 아버지를 지금까지 살아 계시도록 할 수 있었다.
마음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어떤 부자지간보다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사이의 나의 아버지는 아들의 어려움을 간파한 듯 4분의 1도 남지 않은 뇌를 이용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들을 위해서 사용한 마지막 하늘의 상급 카드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너무도 오랫동안 꿈에서 "삶이 너무 힘들지"라고 하시면서 찾아오셨다. 좋은 집 준비했으니 고생 그만하고 그만 가자고도 하셨다. 가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 그러면 장면의 페이드 아웃을 경험해야 했다.
많이 그립고, 한편으로는 큰 후회가 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이 방향을 잃었을 때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도와주셨다. 심지어 물질로 해결을 해주지 못하는, 시기에도 방법을 찾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으셨다. 가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당하고 연락드리면, "화를 가라앉히고 조금만 기다려봐라"라고 하시고는 했다.
때로는 세상의 모든 험담도 늘어놓았는데, 그때마다 위로를 주셨다. "모두 불쌍히 여겨라" "넌 화만 안내면 다 이길 수 있다"
크리스천인 나에게 멘토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선생님 어려우세요? 하나님께 기도하세요!"와 닿지 않는 감사한 멘토의 멘트가 아닌가 싶다. 영적인 형제를 자처하는 그들의 경건한 말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듣는 위로와 비교하면 줍고 싶지 않은 반짝이는 십 원짜리 동전과 같았다.
어떤 해결의 힘도 남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의 작은 신음까지도 왜 그렇게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멘토는 많다. 돌아보면 운 좋게도 그런 행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소중함은 잘 몰랐다.
그 무지함은 멘토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일까지 만들었다. 결국 "당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빚을 탕감받으며 관계의 끝을 맺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주워듣고는 그것으로 위로를 삼으려는 어리석은 인생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 어리석음 조차도 탓하기보다는, 다시 설 힘을 얻으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우물의 펌프를 움직이는 마중물까지 마셔버린 어리석음처럼 육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큰 멘토인지 그때는 몰랐다.
짐이 되는 것을 아시고 그만 하늘의 상급을 찾아서 가시려는 그 눈빛은 가장 소중한 멘토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고작 화답할 수 있는 인사는 "아버지는 악기 연주하실 때 가장 멋있으셨어요"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아버지 저 파산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돈을 구해보마"라는 말부터 먼저 하지 않으셨을 나의 아버지는 분명 나에게 멘토이셨다. “뭐라도 먹고, 기도해라" "그리고 천천히 정직하게 돌파해라"로 해결의 길을 안내하셨을 것이다.
누구나 나름의 어려움으로 살아간다.
그 순간마다 멘토가 있다면, 그 고통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멘토'가 있는가?
그렇다면 절대 죽이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