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그 집
2년 전 유튜브에 색소폰 채널 만든다고 덜컥 스튜디오 장소부터 계약했다. 지인이 연습실로 사용하던 건물에 2층이 세입자가 나간다고 해서 늦은 밤 구경을 했다. 노래 <창밖에 잠수교가 보이다 보여>라는 가사의 장소가 여기구나 싶었다. 그냥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야경에 끌려서 보증금과 공사비를 빌려서 겁 없이 계약부터 했다.
인테리어 공사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야금야금 고치는 비용이 들어갔다. 바닥은 질이 괜찮은 수입 카펫을 깔고, 잠수교가 보이는 대형 창에는 굵직한 나무 블라인드도 달았다. 색소폰 연주 영상을 찍어야 해서 방음 효과를 주는 조금 두툼한 커튼도 벽에 둘렀다. 이전 세입자의 어둡던 조명도 밝게 바꾸었는데, 인건비 줄여보겠다고 직접 공사를 하다가 눈에 석면 가루가 들어가는 바람에 안과에서 제거하는 고통도 겪었다.
제품 홍보도 찍어야 해서 전동식 아나운서 테이블을 신품으로 구매했다. 공기청정기, 에어컨 그리고 자료 화면을 핑계로 벽걸이 TV와 다양한 분위기의 촬영을 위해서 소파 등 각종 집기도 샀다. 물건이 늘어갈수록 마치 소금 덩어리가 물에 닿아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시작은 창대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미약하지 않았다. 욥기에 나오는 욥 친구들의 조롱에서 나온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가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꿈을 앉고서 색소폰 유튜브 영상을 매일 찍었다. 촬영은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내용으로 준비한 강의도 연주도 그리고 만담 같은 수다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하는 영상 작업은 고통이었다. <루마퓨전 강좌>를 유튜브로 열심히 보면서 익혀나갔다. 그렇게 하루가멀다고 창밖에 잠수교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해가 뜨는 것을 보아야 했다.
영상의 질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조금 더 좋은 음향과 고급스러운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장비를 늘려갔다. 덩달아 빚도 늘어가는 날이 이어졌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늦은 밤 창밖으로 보이는 반포대교와 잠수교의 불빛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조금씩 쉬워지는 편집이 뭔가 알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 하는 편집은 알 듯하다가도 꼬이고 있었다. 정말 세상의 모든 편집자가 얼마나 대단하고, 강아지 어미의 고생인지 뼈저리게 알려 주었다. 욕심은 라디오스타 방송 편집 수준이었지만, 현실은 너무 초라했다.
그래도 1년 동안 열심히 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구독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짜장면 10그릇 먹는 것을 도전하다가 남은 짜장을 벽에 던지고 난장판을 만든 대단치 않아 보이는 유튜버의 백 분의 일도 모으지 못했다. 1천 명을 꼬박 1년 걸려서 겨우 모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의욕은 바닥이었고, 당장 월세를 내기 위해서 더 손을 벌릴 곳도 없었다. 보증금 까먹기가 직업이 되는 그 시점에서 코로나 19도 찾아왔다. 절망도 도를 넘으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현실 감각도 없어지고 있었다.
"그 건물에 있던 부동산 업자가 몇 년 전 자살을 했어." 공사를 시작하던 날 에어컨 실외기 방향으로 실랑이를 했던 옆집 영감님의 말이 생각났다. 격려도 덕담도 아닌 그런 이야기는 왜 해주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7년 전 색소폰 판매로 큰 손해를 보았다. 결국 다 털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다시 사업을 해보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다시 색소폰 레슨을 시작했다. 겨우 시골에 학원 차린다고 남은 돈도 없었다. 아니 공사비로 빚만 늘고 있었다.
다시 시작이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이 암초를 또 만났다.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그놈의 자살 이야기가 뭐라고 편집하다가 잠든 사무실에서 여러 번 가위에 눌리고는 했다.
"사무실이 참 예뻐요" "꼭 카페 같아요" "창밖에 한강도 있고, 야경도 좋아서 부러워요"
속도 모르는 방문자들은 창밖 풍경과 깔끔한 인테리어를 만끽했다. 속은 이미 다 타서 숯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유튜브에서는 "여러분 코로나 꼭 이겨 냅시다"라고 말하고는 했다. 유명해지는 것이 답이라 생각해서 '유명해지는 법'에 관한 영상도 만들었다. 하지만 구독과 좋아요는커녕 악연이 있었던 사람의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라도 살려야 빚도 갚고, 은혜도 갚을 텐데 생각했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그냥 카페 해 볼래요?" 옆에서 버티다 지친 지인이 말했다.
어느 정도는 인테리어가 되어있기에 몇 군데만 손보고 준비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만, 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일을 벌이고 있었다. 당근마켓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찾기 시작했고, 운이 좋다며 무료 나눔 가구를 얻으러 가자고 했다. 마지못해서 따라다니면서 생각 이상의 가구와 물품에 조금 놀랐다. 남의 사용하던 물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바뀌고 있었다.
운반은 해외에서 선교사로 있다가 들어온 후배가 트럭을 가지고 있어서 늦은 밤을 이용해서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배가 인테리어 공사 일을 하고 있었기에 작은 방으로 사용하던 곳을 주방으로 만드는 작업을 함께 했다. 벽 칸막이 일부를 자르고 목재를 이용해서 커피를 받는 공간도 만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은 영상 편집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배와 페인트칠이었다. 줄여야 할 인건비도 없었기에 서로 힘을 합쳤다. 그렇게 점점 사무실이 카페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카페의 이름을 짓는 것,
문뜩 창밖을 보다가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 이상하다 그 집"이라고 말하며 그 이름으로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름으로 장난하는 거 아니라며 말리기 시작했다.
커피점이 있는 건물의 외벽은 크고 넓었다. 강변북로가 옆에 놓여있고 아침저녁 교통체증도 있었기에 이런 특이한 이름을 보면 잘 기억할 것 같았다. 건물에 대형 게시물을 걸어도 다행스럽게 세입자만 있는 건물이라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정말 크게 벽 전체에다 <커피-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 이상하다 그 집>이라고 플래카드 붙이는 거 어때요?"라고 신나서 말했다. 하지만 광고 비용을 먼저 지급해야 하는 지인은 묵묵부답으로 마음에 들지 않음을 표현했다.
그 이후로 다양한 이름을 제시했다. 하지만 번번이 투표에서 떨어졌다. '카페 시트롱' '카페 라빌레트' 등 프랑스어로 지어도 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영업신고증을 받기 위한 필수 교육이 있었고 당장 사업지 등록증도 내야 해서 원고 마감을 앞둔 작가의 심정처럼 졸작만 나오고 있었다.
"그래 우리 주소로 하자!" "동빙고동 180번지" "서빙고동 주민도 생각해서 앞의 동은 빼고 빙고 180으로 하자"라고 말했고, 모두 동의를 했다. 아기가 태어났고 돌림자에 맞춰서 짖다가 지쳐서 흔한 이름을 짓는 것처럼 그렇게 빙고 180 커피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