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점이 아닌 즐김
2021년 3월까지 브런치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글쓰기 좋아한다고 했더니, 지인이 알려 주었다. 나만 모르는 세상이 있구나 싶어서 유튜브 검색을 했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듯했다. 나름 스킬이랍시고 300자 글을 빠르게 적었다. 블로그 10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는 생각과 이 정도면 멋지게 채웠으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조금 성급했다. 일과를 마치고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며 급하게 신청서를 작성했다. 쓰면 받아주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순서대로 작성했다. 간단한 확인 절차로 플랫폼을 제공하는 정도로 여긴 결과는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이 "당신 모시기에 우리 그릇이 작아요"라는 묘한 느낌이 느껴지는 20자의 글을 받았다.
크게 마음 상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진짜 평가를 해보기나 한 거야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은 오기가 생겼다. 겸손한척해서라도 일단 문을 열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재도전을 했다. 늦은 밤이 아닌 낮시간이었고, 정신이 멀쩡한 상태라서 조금 더 확신이 있었다. 나름 브런치 심사기준을 감잡아보려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신중을 기했다.
블로그 10년 쓰면서 나름 인기도 있었다. 색소폰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었고, 썼다 하면 바로 천 명씩 읽고는 했다. 덕분에 일본 색소폰 브랜드의 마케팅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브런치 역시도 독자가 많아질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고민했다. 색소폰 교본이나 강습으로 오해해서 탈락되는가 싶기도 해서 주제를 폭넓게 잡아야 브런치 작가로 받아주겠지 싶어서 나름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의 제목을 찾아서 적당히 섞어 넣었다.
브런치는 급히 먹는 아점이 아니었다. 여유 있게 즐기는 것이 브런치인데 역시나 급했다.
역시 모시지 못한다는 답으로 겸손의 부족을 알려주었다. 삼수는 기본이라는 글을 읽었다. 서래마을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아저씨라고는 혼자라서 적잖게 당황했고, 뭘 먹었는지도 모르게 급하게 먹고 나오고 말았다. 카카오 브런치에도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재도전을 위한 구상을 했다.
"이번에 또 떨어져도 좋으니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주제의 목차를 써봐야겠어"라고 불합격을 은근히 기뻐하는 동료에게 말하고는 기도를 했다. "주여 나름 쓴다고 생각한 시절 회개하오니, 일단 붙여만 주소서" "그리고 남의 슬픔이 기쁨이 되는 저 자에게 배아픔을 주소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그러다가 바쁜 시간이 이어지는 바람에 아주 잠시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동료가 교회 찬양 영상 찍는 것을 도와달라기에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려는데, 브런치 로고가 보였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기도의 대상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브런치 작가님~ 앞으로 유명해지시나요?"라며 축하인 듯 축하 아닌 축하를 해주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유명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50년 넘게 산 인생에서 듣고 싶었던 부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이제 유명해도 될 때라고 생각하니 도와주소서"
버스를 타면 글을 쓴다. 잠시 틈이 생기면 수정도 한다. 명함을 새로 만들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