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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Nov 08. 2023

성당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청개구리 불교신자입니다.

가끔 누군가 나에게 종교가 있나 물어보면 선뜻 확실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는 생판 남에게는 그냥 '성당 나가요'라고 이야기하고

조금 친분이 있거나, 서로 지인이 겹쳐서 앞으로 안부를 계속 나눌 거 같은 사람들에게는

'성당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매주 나가지는 못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자주 만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성당에 가지만 부처님 말씀도 늘 생각하며 지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결혼을 준비할 때 남편은 내가 불교신자 인걸 알고 있었고 나도 남편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아주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상대의 종교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자는 합의가 있었다.

주말에 자신은 성당에 갈 거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좋고 절을 찾아가도 상관 않는다 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청개구리가 살고 있었는지 하지 말라 하면 더하고 싶지만 막상 맘대로 하라고

하니까 뭔가 하고 싶던 의지가 스르륵 사라지고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일상의 갈등의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며 살자는 게 내 삶의 목표이고, 종교는 내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

내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배우자의 종교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함께 성당을 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불교신자로 살고 있을 때는 그저 전국의 아름다운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아가는걸 더 좋아했지

그다지 불심이 깊지 않은 날라리 신자였기에 부처님 말씀을 잘 실천하며 살고 있지는 못했다.

이렇듯 부처님 말씀도 잘 실천하지 못하며 살던 내가  하느님 말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아무런

신심(信心) 이 없이 성당을 다니고 미사에 참석하다 보니 미사시간 내내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머릿속에는

온갖 분심(分心)이 활개를 치곤 했다.

물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세례를 위한 예비자 교육도 받고 성경공부도 했지만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 없이 받는 교육들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였다

신부님의 강론도 매번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좋은 말씀이겠지 하고 듣다 보면 내 머릿속은 늘 신부님 말씀과

상관없는 낯선 어딘가를 헤매고 있고 '주보'에 실려있는 말씀들이라도 좀 읽어보려 해도 낯선 언어들로

표현하고 있는 그 글들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힘들게 시간 내서 앉아있는 자리...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미사시간을 지난 한 주 동안의 내 생활을 반성하고 다음 한주도 열심히 살겠다고 하는

'반성과 다짐'의 시간으로 정하고 앉아있으니 어수선하던 마음이 조금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미사 내내 반성과 다짐만 할 수는 없는 일, 짧은 '반성과 다짐'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내 안에는 또 온갖 잡념과 근거 없는 논리와 맥락 없는 상상들이 뒤섞여서 나를 혼란하게 한다.

내 몸은 성당에서, 늘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라 하고 의심 없는 믿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는데

내 머릿속은, 내 안의 부처님을 찾으라 하는 불경의 구절들이 떠오르고, 이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참선' 모드로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청개구리도 이런 청개구리가...

들로 산으로 절을 찾아 돌아다닐 때는 그렇게 참선하는 시간을 지루해하고 선배들이 읽으라 권하는

책들도 안 읽고 게으름을 피웠는데 이역만리타국에 있는 성당 미사시간에 앉아서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고 참선을 하고 앉아있다니...

그러다 한국 방문 중에 우연한 기회에 4박 5일간의 템플스테이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결혼 전 한국에 살 때 템플스테이를 많이 갔었지만 그때는 정말 철이 없어서 템플스테이의 진정한 의미도

생각 못하고 지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거워서 그냥 여행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찾기고 작정하고 나름 진지하게 임했던 그 4박 5일의 템플스테이는 정말 끝도 없이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내 깊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 여러 주제에 대해 깊이깊이 끝도 없이 파고들면서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 란 존재에 대한 생각, 자기 성찰, 사는 건 무엇일까... 등등

템플스테이지만 주최 측에서 의도적으로 종교적 접근을 피하고 종교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안 했음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빠질 수 없는 '종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성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되돌아보니 그 유명한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템플스테이 마지막날에...

물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구약의 첫 페이지도 열지 못했지만 내 도서목록에 굵은 글씨로 자리 잡고 있다.


나처럼 신심이 없는 나이롱신자들의 종교생활은 대부분 아이들 중심으로 흘러간다.

매주 이어지는 한글학교와  주일학교 일정을 따라가고, 방학중에도 이어지는 여름학교 스케줄도 빠짐없이

참가하는 게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슬슬 성당 생활

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심이 깊은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도 자아가 생기면서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종교적 신념이 없는 나 같은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은 종교에 대해서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성당에 왜 가야 하냐며 버티고, 주말에 쉬지 못하고 성당 가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다.

종교에 대해서 나에게 느슨함을 유지했던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자세를 보이며 성당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려가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아이들 때문에 그나마 열심히 가던 성당을 이제 '매주' 가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좀  약해지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게을러지고 나의 이런저런 핑계에 함께 환승한 남편도  한주 두 주 성당을 빠지다 보니 자연스레

냉담자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하다 어쨌든 '교적(敎籍)'까지 있는 주제에 매주

성당에 나가지 못하는 게 장기결석을 하고 있는 학생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사시간에 앉아서 참선을 하더라도 '반성과 다짐'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이제 다시 성당에 가서

차분하게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듯하다.

살다 보니 해야 하는 숙제는 자꾸 늘어만 간다.

병원에 가면 뭔 예방주사와 검사를 그렇게 정기적으로 하라고 하는지...

거울을 보면 나가서 운동하라 하고,

집안을 돌아보면 연초에 다짐했던 '미니멀라이프' 빨리 하라고 하고,

한국에 있는 친정엄마와 통화하다 보면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야 할 거 같고,

한해를 마감할 때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은퇴설계' 와도 친해져야 하고,

자리 못 잡은 채 성인이 된 아이들을 내 인생과 분리시키는 연습도 해야 하고......

이 모든 숙제들을 안고 미사를 가던, 법회를 가던 '반성과 다짐'의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미사 말미에 나누는 인사가 좋다.

"Peace be with you!" 평화를 빕니다,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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