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그를 주인공으로 골랐는가? 그가 무슨 그럴듯한 일을 했단 말인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유명하단 말인가? 독자인 내가 왜 그의 인생의 사실들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작가로부터 13P -
도스토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을 읽고 있다.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있는데 1권의 1/3 정도 읽었다. 왜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작가가 이런 말을 썼는지 처음에는 그냥 읽었는데 읽다가 다시 읽어보니 조금 이해가 간다.
주인공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중년의 아버지로 술과 방탕한 생활, 세 아들에 대한 무책임으로 양육하지 않았다. 세 아들은 각자 욕망이 가득찬 드미트리, 이성적인 이반, 사랑과 신앙이 가득한 알료샤 3형제가 등장한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렇게도 무책임한 아버지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분노와 어이없음이 반복되는 감정으로 읽었다. 읽다가 에이 ~ 읽기 싫다고 덮고 자는 날도 있었다.
도스토에프스키는 왜 이런 아버지를 등장시켰을까?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가족 안에는 사랑, 갈등, 미움, 질투, 폭력, 소외, 결핍, 욕망, 배려, 존중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가정생활을 원만히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와 반면에 무책임한 가장이 있는 경우에는 가정이 파탄 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방황하며 성장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양심도, 책임도, 사랑도, 반성도, 성찰도 없는 인간이다. 아버지가 이러면 어머니라도 있어서 사랑을 받으면 나아질 텐데 불행하게도 어머니란 존재도 아버지로 인해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드리트리를 낳은 첫 번째 아내 아델라이다는 기품 있는 귀족 여성이지만 표도르의 난폭한 성격을 견디지 못해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는 게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로 인해 드리트리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둘째 부인 소피아는 이반과 알료사를 낳는다. 아주 연약한 여인이었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했는데 표도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당했으니 결국 죽고 말았다. 아, 정말 표도르 같은 인간은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남자다.
세 아들 외에 사생아가 있다. 스메르쟈코프로 정신적 장애가 있는 떠돌이 여성이 낳은 아이다. 표도르에게 학대를 당해 아이를 임신했고 출산 직후 사망했고 출산 직전 표도르 집에 들어온다. 정학하게 표도르의 아들이라고는 책에 나오지 않는데 추측만 한다.
이런 가정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혼란과 방황의 연속이다. 책 초반부라 사생아까지 소개한 부분을 읽은 상태다. 무책임한 아버지, 방탕한 아버지, 폭력적인 아버지 책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난다. 이 아버지를 통해서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을까?
어떤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인간의 본능은 무엇인가?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결핍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결핍은 어떻게 승화되는가?
선이라는 게 있는가?
우린 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누가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가?
부모로 인해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불안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아이들의 주변 친척, 지인의 손에서 자랐다. 그 안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알료샤의 성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청소년들은 소설을 읽으면 감사하게 된다고 한다. 너무나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서 저절로 자신의 상황에 감사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런 배경의 소설은 이해도 가지 않을뿐더러 그 시대적 배경까지 찾아보게 된다. 19세기 러시아는 사회가 혼란했고 자본주의 초기였다고 한다.
작가는 또 어떤가? 아주 드라마 같은 인물이다. 사형에 처했는데 극적으로 사형이 취소되었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간질, 도박중독, 가난한 삶을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다. 불운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아버지와 같이 무책임하고 방탕한 아들이 되는 반면에, 반대로 아버지와 반대로 바르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앞으로의 소설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