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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자 영어강사 이보영님의 어머니

유서를 남기는 엄마의 마음

by 리코더곰쌤

제목에 이끌려 책 한 권을 무심코 집어들었는데 표지 사진이 낯이 익었다. 1934년생 여성. 그녀는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공군 비행사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딸은 우리가 모두 아는 영어강사 이보영 선생님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이야기 <나는 매일 하늘을 품는다>를 읽으며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만들어 낸 개척자의 삶을 엿보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은 네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누가 뭐래도 네 인생은 네가 컨트롤 해야 한다."

아, 나 이 분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보영 선생님이 영어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가 파일럿이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다는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빨리 그 사연을 만나고 싶었다.


김경오 선생님은 어린 시절 이북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이북데기’라는 놀림을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더욱더 공부에 열심을 냈다. 그러던 중 1948년 일생일대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교장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고 본 시험에 최종 합격을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1기 공군 여자 조종사 후보생 시험이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군인이 되는 것은 집안 망신”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몰래 창문을 넘어 입대한 그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가혹한 훈련은 물론이거니와 이유 없는 기합,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진급에서도 제외되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6.25전쟁이 발발했고 김경오 선생님은 사선에서 비행 작전에 투입되며 나라를 지켰다.


함께 입대한 여자 동기들 중 유일하게 예편하지 않고 군생활을 지속하던 그녀는 후학을 양성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으로 유학을 간다.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나라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고 그 생각은 ‘비행기를 가지고 고국에 돌아가겠다’라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그녀는 비행기를 가지고 고국에 돌아와 후배 양성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이 비행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는 한국여성항공협회를 만들어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꾸고 남녀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여성운동에도 앞장선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회의 등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냈고, 항공 발전을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 책을 읽으며 김경오 선생님의 목표를 향한 적극적인 도전의식, 꿈을 향해 노력하는 성실함, 끈기, 불굴의 의지에 크게 감동했다. 특히 오늘을 살아낸 결과라는 문장이 마음을 울렸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최고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도, 비행사에 대한 열망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낸 결과일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상 점호를 하고, 다려 놓은 군복을 입고, 정해진 훈련을 소화하고, 기합을 받고, 밥을 먹고.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물이 바로 나, 김경오인 것이다. (6p)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는 것, 이것이 김경오 선생님이 강조하는 삶의 자세다. 또한 '유서쓰는 엄마'라는 제목의 글도 참 인상적이었다.


김경오 선생님은 비행을 나가실 때마다 어린 두 딸에게 편지를 써 놓고 조종간을 잡았다고 한다. 혹시라도 모를 만일에 사고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비행을 해야 사랑하는 자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다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그 편지를 태워버리고, 또 편지를 쓰고 태워 버리는 일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 일지가 생각났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늘 유한하다. 특히 독립운동을 하며 늘 목숨이 위험했던 김구 선생님이나, 어린 딸들을 집에 두고 조종간을 잡아야 했던 김경오 선생님은 언제나 죽음과 가까이에서 사는 삶이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 절절하게 편지로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본인이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적어본다. 진짜 명언인듯!


지금 나에게는 내 삶의 방향을 과감히 틀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 인생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겁이 날 게 하나도 없었다.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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