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에서 20년 전 제자를 만날 확률은?
문경민 작가의 소설 <훌훌>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아, 이 작가와 동시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싶었다. 그가 묘사하는 소설의 문장이 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나의 최애 소설책, 훌훌!
주인공 유리. 바스라질 것 만같던 이름도 찰떡아닌가! 유리가 미희와 사이가 뻘쭘해진 시점에 문자로 대화를 하는 장면, 난 이 때부터 수도 없이 카메라를 눌렀다. 도무지 셔터를 멈출 수가 없다.
p.90 채팅이 꼭 필요한 때가 있다. 엉망이 된 기분을 감추고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야만 할 때, 화가 나고 치사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속을 감춰야만 할 때, 갈비뼈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가 보라색 가스를 뿜어내는 듯하지만 진짜 축하해! 너무 잘됐다! 최고최고! 하는 말들을 써야 할 때 채팅은 정말 필요했다.
유리가 세윤이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
난 여기를 읽으며 작가님이 여자 분인줄 알았지 뭐야. 사춘기 여학생의 마음을 여찌 그리 잘 나타냈는지. 이건 여중 여고 여대 나와 여자만 있는 직장 다니고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기술인데! 역시 대단한 작가님!
p.91 "맛이, 괜찮구나."
이 쉼표 하나가 기가 막힌 역할을 한다. 유리 할아버지가 원래는 이런 다정하게 표현하는 분이 아니시니 더 그렇다. 문경민 작가의 작품에는 이렇게 음식이 많이 나온다. 따뜻함을 표현하는 데는 집밥만 한 것이 없다.
아이고, 주봉이 사랑해! 시대를 잘못 만나, 말 타고 활 쏘고 도끼를 가지고 싸움을 해야 하는 아이가 교실에 갇혀있다. 유머와 재치는 문경민 작가님의 또 다른 능력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갚음하면 안 된다는 것! 이 부분, 아이들에게 꼭 학폭 예방교육할 때 알려줘야겠다.
똑똑한 미희의 처신을 보고 나도 배운다. 아, 어쩌면 이렇게 야무질까? 우리 유리 옆에 주봉이와 미희, 세윤이가 함께 있어 너무 다행이다.
문제가 발생한 시간, 장소, 함께 있었던 사람 은 누구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기. 친구를 모욕하는 아이들에게 저렇게 대차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p.165 "욕설이 섞인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아. 그건 언어폭력이거든. 안에 있는 내 친구들이 바로 기록할 거야. 나중에 신고할 때 자료로 쓸 수 있어. "
아, 고향숙 선생님 등장. 지난번에 문경민 선생님 북이 토크에서 질문드렸을 때, 학생들의 뒷담화가 모두 사실이었냐고 여쭈어봤는데 작가님은 진짜 그런 의도였다고 답하셔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p.244 고통이 영혼을 쥐고 흔들었으나 할아버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괴팍하다고 여겼던 할아버지의 성정이 어쩌면 고통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오게 했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와 나와 연우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점에서 하나였다.
그리고 여기는 내가 뽑은 명대사.
p.240 찰떡 꿀떡 무지개떡 맛이었다. 나는 깐 마늘을 절굿공이로 쾅쾅 찧으며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떤 슬픔은 가슴에 하얀 자국을 남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고통은 한 사람이 그 사건을 경험한 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그 행방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문경민 작가 북콘서트)
그의 북콘서트에 참여하며 난 진정한 성덕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우리 선생님의 모든 삶, 작품, 학교, 학생들, 가족분들에 예수님의 축복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더 많은 작품으로 이 세상에 기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20년 전, 문경민 선생님 옆 반이었던 남학생이 늠름한 교사가 되어 선생님 신작에 사인을 받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아, 진짜 이런게 정말 멋진 삶이지!
가끔 혼자서도 북토크 장면이 생각이 나서 피식피식 웃곤 한다. 암만 생각해도 제목도 너무 잘 지었단 말이야. 훌훌! 나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 모두 훌훌!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다.
p. 255 "깨어질 것 같았던 우리의 유리가 훌훌 털어 내고 훌훌 날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이 소설을 읽은 당신께서도 훌훌 하시기를 바란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다. 오늘 하루를 힘껏 채우시기를. 훌훌 털고 평안한 잠을 이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