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의 매체 피로도를 낮춰주는 책읽기
재미없는 책은 덮으셔도 된다! 우리는 너무 ‘극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래서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다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왜 재미가 없을까? 자책하면서 어떻게든 다 읽겠다고 안간힘을 쓰거든요. 재미없는 책은 덮으셔도 돼요. 나한테 그 책은 그냥 재미없는 거예요. 그리고 또 재미있는 책을 찾으면 돼요.
너무 복잡한 의미를 두고, 자책하고, 나는 책을 싫어하는 걸까 고민할 이유도 없어요. 어떤 책은 어렵지만, 다음을 읽고 싶게 만들고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책도 있어요. 그런 책을 만나면 그때 끝까지 보시면 되죠. 중요한 건 읽는 행위를 바로 시작하시라. 당장 지금 이 순간 유튜브를 끄시고 옆에 있는 책을 읽으시라. 읽는 행위를 한번 시작하면 행위는 또다른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언젠가 주위에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스스로를 만나시게 될 거예요, 6개월 안에 분명, 꼭, 매직!
-출판인 이현화ㆍ출판하는 언니들 중(교보문고 인터뷰)-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책을 주문하려고 접속하다가 우연히 여성 출판인 다섯 분의 이야기를 엿보게 되었다. '출판하는 언니들의 추천책'이라는 제목 속에는 출판 경력 도합 155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1인 출판사 대표님들이 골라주는 책 이야기가 담겨있다. 재미없는 책은 덮어도 된다는 이 말이 왜이리 좋은지! 완전 매력적이다. 와!!! 극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이 말 너무 시원하다. 이 말이 독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편견이랄까 의무감, 마음을 짓누루는 부담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 같다. 그런 문장은 또 있다.
책이 많은 서점에 직접 가보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단순한 이유로 흥미가 가는 책, 예를 들어 표지가 재밌어 보인달지 혹은 어떤 카피 문장 하나가 나를 이끈달지, 그렇게 어떠한 정보 없이 운명적으로 만난 책으로 시작해 보는 거죠. 그리고 많은 이들이 책과 멀어진 이유 중 하나가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인 것 같은데요.
‘찍먹’을 많이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 읽지 않아도 돼요.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어버리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도 괜찮아요. 그런 시도를 무수히 하다가 끝까지 읽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이 되게 크거든요. 그렇게 계속 이어가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에세이’는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볼 수 있고, 그만큼 다른 책보다도 훨씬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책을 읽고 교훈을 얻는다거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겠다는 기대나 의무감은 좀 내려놓고, 그 책에서 느끼는 자신의 재미 포인트를 쫓아가면 좋겠어요.
-‘유유히’ 출판사 이지은 대표님ㆍ출판하는 언니들 중(교보문고 인터뷰)-
책도 '찍먹' 해도 된다니!! 이건 진짜 명언임. 교훈, 기대, 교양이나 지식 습득 보다는 그 책에서 느끼는 자신만의 재미 포인트를 찾으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에세이 러버는 이 분 인터뷰가 참 좋습니다. 으하하
스크롤을 쭉 내리며 둘러 보는데 군침이 도는 책들이 속속 눈에 띈다. 드라마로 왜 안만드는지 모른다는 평이 나왔던 '체공녀 강주룡' 이거 아주 재미있을 듯! 출판하는 언니들이 뽑은 추천도서 작품이다. 한겨례 문학상을 탄 작품이라니 문학성은 보증수표일 것이며, 출판인들의 엄지척을 받은 작품이니 재미도 보장일 듯하다.
이 사진인가부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피에서 퍼왔음. 26살 나이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평양 을밀대 처마에 올라간 강주룡의 이야기. 그녀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모습이 궁금하다.
문학동네 장윤정 편집자님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더 많이, 더 강하게, 더 빠르게를 외치는 요즘 덜 연결되고, 조금 천천히를 외치는 이 상황이 난 왜이리 좋은걸까? 미라클 모닝, 갓생은 다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1인 여기에 있습니다. 기승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이게 포인트다.
제가 최근에 관심 있는 건 무언가를 덜 하는 것인데요. 성장하지 않는 것, 그래서 덜 연결되고 덜 발전하고 덜 소비하고 무언가를 더 하는 것에는 굉장히 익숙해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데 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장윤정 편집자 인터뷰 중에서)
아참! 그리고 이 말도 너무 인상적이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책의 장점을 설명하시는 장윤정 편집자님 어록, 그 중에서도 매체에 대한 피로도를 낮춘다는 표현 너무 좋음. 내가 그래서 책을 사랑하나 봄. HSP에게는 만화도, 드라마도, 영화도 모두 과자극임. 책이 딱 좋음.
수많은 자극적인 매체들 사이에서 책만큼 고요한 매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 고요함을 드물고 귀하다고 여겨주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매체에 대한 피로도를 낮추는 데 책이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독서 행위만큼 능동적으로 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즐겨보는 숏폼(Short-form)이나 여러 형태의 영상과는 다르게 책은 내가 직접 읽어야 되잖아요.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이 책이 가진 큰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동네 장윤정 편집자님, 교보문고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