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건국 신화와의 놀라운 연결고리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2016)’, ‘이블 데드 Evil Dead(2013)’ 등 공포 장르에 탁월한 연출로 주목받는 페드 알바레즈 Fede Alvarez 감독의 신작 ‘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2024)’가 지난 8월 전 세계에 공개되었습니다. 이전 시리즈들의 다소 엇갈린 평가와 달리, 이번 신작은 공포 영화의 본질을 강조하며 팬들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 '로물루스'인 이유,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는 로마의 건국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신화를 이해하면, 영화 제목이 ‘로물루스’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로물루스 Romulus 와 레무스 Remus 는 로마 건국 신화의 핵심 인물입니다. 이들은 고대 도시 알바 롱가 Alba Longa 에서 태어났습니다. 알바 롱가의 왕 누미토르 Numitor 는 동생 아물리우스 Amulius 에게 왕위를 빼앗깁니다.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외동딸 레아 실비아 Rhea Silvia 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베스타 신전의 사제로 삼지만, 그녀는 전쟁의 신 마르스 Mars 의 쌍둥이 아들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아물리우스는 쌍둥이를 티베르 강 Tiber 에 버리도록 명령하지만, 암늑대 Lupa 가 그들을 발견하여 젖을 먹이며 키웁니다. 이후 목동 파우스툴루스 Faustulus 가 발견해 이들은 전사로 성장합니다. 성인이 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 롱가로 돌아가 아물리우스를 무찌르고, 누미토르에게 왕위를 돌려줍니다. 이후 그들은 현재의 로마가 위치한 팔라티노 언덕 Palatino 에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쌍둥이 형제는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죽이게 됩니다. 로물루스는 도시를 로마 Roma 라 명명하고 첫 번째 왕이 되어 법과 제도를 세우고 도시를 번성시킵니다.
첫 번째, 영화가 전개되는 장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폐기된 우주 정거장 ‘르네상스 호’에는 두 개의 실험실이 있는데, 각각의 이름이 ‘로물루스'와 ‘레무스’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들에서 거대 기업이자 악의 기원인 웨이랜드-유타니 Weyland-Yutani 사의 오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더 나은 도시를 건설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웨이랜드-유타니는 사악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 있다. Building Better Worlds.’ 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 인간의 진화와 생존을 다루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기저에는 언제나 ‘인간의 진화’에 대한 검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로마 건국 신화에서 인간과 신의 결합으로 태어난 로물루스와 레무스처럼, 영화 ‘로물루스’는 인간과 제노모프 Xenomorph 사이의 새로운 종의 탄생을 상징합니다. 신화 속 어미 늑대의 젖과 에이리언의 창조적 파괴성을 지닌 검은 액체의 공통점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단, 신화 속 늑대의 젖은 기꺼이 주어진 것이지만, 영화 속 검은 액체는 엔지니어로부터 이를 훔침으로써 재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세 번째, 형제애와 특별한 유대감이 투영되었습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이야기는 영화 속 주인공인 레인 Rain 과 앤디 Andy 의 관계에 투영됩니다. 그들은 인간과 인조인간 간의 특별한 유대감을 공유하며, 이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힘이 됩니다. 다만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형제애가 비극으로 끝을 맺은 반면, 레인과 앤디는 서로의 유대감을 통해 인간의 탐욕을 극복하고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네 번째, 영화 제목의 철자에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7번째 영화입니다. 감독은 ‘로물루스 Romulus’가 7글자로 이루어져 있어 ‘레무스’ 대신 이 제목을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섯 번째, 디즈니의 새로운 프랜차이즈화의 일환입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된 후 처음으로 제작된 에이리언 영화입니다. 신화 속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건국했듯, 디즈니는 20세기 폭스가 제작한 에이리언 시리즈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스타워즈’와 같은 새로운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2025년 디즈니+에서 공개 예정인 드라마 ‘에이리언: 어스 Alien: Earth’를 통해 어느 정도 그 방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마 건국 신화는 에이리언 시리즈 훨씬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여행의 필수 방문지 중 한곳인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 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암늑대의 젖을 먹는 장면을 형상화한 동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로마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 ‘AS 로마 AS Roma’의 로고 또한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요소는 이번 영화에 깊이 스며들어, 새로운 이야기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제목에 숨겨진 의미와 로마 건국 신화의 상징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로마 신화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조명한 이번 작품은 고대 신화와 현재의 스토리텔링이 성공적으로 어우러진 좋은 예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