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들이 인간이 갖고 있는 영겁의 시간을 알아?
밤이 내린 사막에 덩그러니 세워진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번쩍번쩍 건물들마다 제각각 빌딩을 감싸고 아래위로 오르내리기도 하고, 좌우로 건물 입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빨아 들일 듯한 휘황찬란한 네온불이 불야성을 이룬다. 죄의 도시 (Sin City)라는 이름에 걸맞게 합법적인 도박과 술, 세상의 최고의 재주꾼들이 모여 오직 라스베이거스에서만 볼 수 있는 쇼로 미국 서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빠지지 않는 명소다.
얼마 전 "구 Sphere"라고 하는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었다. 엄청 큰 구슬(球) 같은 모양으로 만든 건물인데 화려한 쇼를 한다고 해서 가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막상 도착해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작아 보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다른 쇼무대와 비교해 무척 컸다. 무대에는 볼품없이 작은 스크린이 덩그러니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앉기 시작하자 커다란 구로 만들어진 큰 클럽 분위기였다.
쇼가 시작하자 우와! 앞에 놓여있던 보잘것없는 조그만 스크린에서 시작한 영상이 구의 반이상을 차지하면서 앞과 옆과 머리 위까지 떴다. 3-D효과까지 있어서 사자가 입을 벌리면 내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무리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사자가 결코 나를 물지 못했고 그 훌륭한 영상 속 사람들과 동물들은 그냥 영상 속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었다. 좀 고화질로 잘 찍은 영상(?) 정도로 그 이상의 효과나 감탄을 끌어내지 못했다. 좀 식상했다.
우리는 진화해 오지 않았는가? 겨우 1.37:1 비율의 작은 스크린에서 비 내리는 흑백 영화에 울고 웃다가 갑자기 대형스크린에서 스위스 알프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원형극장에서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경쟁하는 벤허의 숨 막히는 경험을 했다. 드디어는 'IMAX', 'Dolby Cinema'등으로 눈호강을 할 수 있지 않았는가? 내 앞으로 뛰어나오는 듯한 3-D 경험도 이미 식상해진 터다.
역시 쇼는 사람이 하는 것이 가장 감탄스럽고 감동과 감사한 생각까지 든다. 어렸을 때 동네에 서커스단이 들어와 공터에 천막을 치고 한두 달 공연을 할 때도 참 재미있었다. 단막극도 하고 만담도 하고 줄타기며 그네 타기 공중제비돌기등 어린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시절 서커스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의 재주꾼들이 모이는 라스베이거스 서커스는 인간의 한계를 더욱 넓게 쓴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많은 서커스 쇼가 화려하기도 하고 스릴이 넘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이나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 아크로뱃(Acrobat)의 움직임 속에 숨어있는 영겁의 시간을 찾아 신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날다시피 다가오는 파트너의 손을 잡기 위해 믿고 뛰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숨을 멎는다.
인간임에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공포일까? 뼈가죽만 남은 듯한 몸매로 가슴과 배가 팽만해지도록 숨을 들이쉬었다가 "푸후"하고 내쉴 때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준비되는 그 짧은 순간의 단호한 결기가 느껴진다. 늘 생각 없이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도록 제작된 로봇이나 AI작동 기계인간에게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공포를 앞두고 무아의 지경으로 들어가 준비하는 가슴 시린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다.
무대 위에 웃통을 벗어던지고 타이츠 바지를 입은 두 남자가 사뿐히 무대로 들어섰다. 한 남자는 한 20대로 보였고 다른 남자는 거의 50대로 보이는 연륜이 있어 보이는 출연자였다. 둘이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며 묘기를 보이는 아크로뱃 쇼였다. 엎드려 무릎을 구부려 발을 하늘로 향하자 젊은이가 그의 발을 쥐고 물구나무를 섰다. 연륜의 출연자는 젊은이의 무게를 지탱하며 아주 느리게 서서히 무릎을 펴 바닥으로 내리는 것이 아닌가? 표현된 균형감과 아름다움을 보다도 파르르 떨리는 근육만큼이나 내 가슴의 근육도 아픔으로 떨려왔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시간의 활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는 음을 또박또박 맞추어 노래를 부르지만 박자를 쫓기에 허둥댄다. 아마추어 무용수는 멀리 뻗었던 팔을 매우 빠르게 되감아 들인다 하지만 프로 무용수의 팔 끝의 손가락을 보면 같은 박자를 타는데도 한없이 더 더 길고 멀리멀리 나아간다. 난 사람의 여유이며 최고의 기술일 테다. 나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숨겨진 “영겁”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기계는 쉬지 않고 24시간을 일할 수 있지만 인간이 찾아 누릴 수 있는 영겁의 시간을 모른다.
나는 기계사람이나 아마추어와는 달리 삶의 고수가 되면 무엇을 해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얼마든지 영겁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많은 일을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다양한 취미생활까지 하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는다. 나는 고수다. 그래서 남들과 같이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안에서 많은 이들이 모르는 영겁의 시간을 찾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도 영겁의 시간을 찾는 인생프로들이 많은 한국이 되면 좋겠다.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