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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만남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만나다.

by 교주

긴 브라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사흘. 여행에 과도한 에너지를 쓴 바람에 삼일을 쉬고도 머리가 멍하다. 나와는 영 접점이 없어 보이는 젊은 장애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만나는 모임이 바로 있었다. 나는 구독자의 대부분이 나를 아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구멍가게 수준의 유튜브이기에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장애인 크리에이터와 비장애인 크리에이터와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아함을 느낀다. 장애 관련 주제를 다루는 크리에이터의 모임이 더 맞는 말인 듯했다.


지체장애를 가진 구르님, 시각장애를 가진 우령님 (유령 아님!, 처음 나는 유령으로 알았음!), 또 다른 시각장애를 가진 시시각각의 크리에이터 주혜 님과 단장인 신홍윤 님, 그리고 관련 전문가 분들이 방문했다. 처음 소개를 들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애차별이 아니다! "미(美)"의 차별이다. 다들 젊고 너무 예쁘고 이미 내로라하게 알려진 크리에이터들을 보니까 내가 차별받고 있음이 확실하다. 준비 안 된 나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와는 완전 딴 판으로 "전환교육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을 읊고 있었다.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유튜브 주제를 "남이 뭘 원할까?"에 초점을 두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 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아마추어적 의견을 냈다. 역시 경로사상에 투철한 한국인들이라 고개도 끄덕이고 공감하는 듯한 그들의 제스처에 넘어가 "공부해야 해요, 여러분!"까지 해 버리고 말았다. 그들과 작별을 하고 나서야 깨달음이 왔다. 그들은 "전문"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방송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고 나는 프로 앞에서 주름은 잡은 아마추어였다. 헛소리를 해 댄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나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다시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미안함과 진심된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다음 일정이 멜로즈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무턱대고 갔다. 혹시라도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둑판같은 길을 이리저리 꿰며 돌아다녔다. 사실 그렇게 극적으로 만난다는 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하지 현실 속에는 불가능이란 생각에도 애를 쓰고 있는 그때 "우리, 숙소에 잘 도착했어요"하는 연락이 왔다. 멜로즈 거리를 배회하던 것이 머쓱해져 살짝 감추며 잘 되었다고 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만났던 젊은이들의 장애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들은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이 싫다고 했다. 내 마음이 아픈 것도 그들을 장애인으로 차별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매료되어 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불편함이 아픈 것이다. 사랑해서 아픈 마음과 비하해서 보는 마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인싸 Insider"면 사랑이고 "아싸 Out sider"면 비하이고 차별이라고 보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 일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정도보다 살짝 부담스럽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것도 관심이고 사랑이고 아끼는 마음의 K-표현이다.


소유와 정기고의 듀엣곡 "썸"의 노랫말처럼 "관심인 듯, 관심 아닌, 관심 같은" 장애를 쳐다보는 "감정"을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다. 결국 쳐다본다는 것은 썸을 타는 "관심"이기에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근거한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대로 서로 알고 트게 되면 나의 천군만마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 크리에이터들의 목표가 남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장애인 차별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이어야 한다. 둘은 분명 다르다.


과연 나는 내가 지금 편히 살 수 있는 입장이라 그들에게 돈 벌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을 했을까?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라는 책을 쓴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분명히 나 외에도 돈보다 중요한 뭔가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에 살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도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 그런데 젊었을 때 보험이든 적금이든 미래의 노년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절약도 반드시 젊음의 일부여야 한다.


나와 만난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유튜브 일을 돈을 버는 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길 원한다. 크리에이터는 창조하다(Create)라는 동사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or)를 붙여 만든 단어로 창조하는 사람, 창작자,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작자에게는 소비자보다 훨씬 더 큰 의무가 있다. 먹고살기 위해 구독자들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창작자에게는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것을 지도자,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처음 초짜 교수로 왔을 때 대부분 어느 분야의 연구를 할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우리 대학은 당연히 "다문화"연구가 활발했고 나는 아시아인이니 당연히 다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디폴트인 것처럼 모든 교수들이 다문화 연구팀으로 이끌었다. 나는 단일민족 대한민국인이라서 다문화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시작했던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한 사람씩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연구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대학에 처음으로 전환교육이라는 주제를 가져왔고 연방정부로부터 많은 연구비를 유치해 백만 불 클럽에 입성했다.


당연히 장애로 인해 사회에서 겪는 불편함과 실생활 속에서 잘 살아내고 있는 자신의 "장애 극복기" 모습을 보여주며 시민의 인식개선을 촉구하려는 것도 소중한 목표이다. 하지만 반드시 장애 관련 컨텐트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단계에 머무르면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나름의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이의 어려움을 함께 아파해 주고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주며, 세상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도자로서의 훈련과 연단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지만 내가 만난 그들은 이미 지도자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으니 이겨내리라 믿는다.


아직 원하는 수준의 구독자 반응에 달하지 못한 크리에이터라도 유튜브가 좋으면 열심히 즐기면 된다. 즐기는 자가 이기는 자다! 구독자 수로 평가받는 경쟁적인 견해보다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 나의 행복지수로 나의 선택을 평가하고 응원해 보자. 남에게 난득호도(難得糊塗)를 강조하며 "수십 번 아는 척하고 싶고, 수백 번 가르치고 싶어도, 좀 어리숙한 척하며 믿고 기다려 주자"를 나 스스로도 익히고 실천하려는데 아! 또 아는 척하며 같은 소리를 했네.


미안, 얘들아! 한마디로 끝낼게. 나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 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미래 유튜브계의 지도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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