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에 KFC가 있었다. 하루는 퇴근길에 KFC에 들려 저녁을 사려했다. 간판에 “Thurs day special 9.99$ for a bucket”(목요일 스페셜 치킨 한박스에 9,99$)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박스에 치킨이 무려 15조각이나 담아주는 행사였다. 한국에서 치킨값이 15000원인데 호주에서 10000원도 안하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물론 식료품 가격은 호주가 한국에 비해 훨씬 싸다. 마트에서 장을 봐 직접 요리 해 먹는것과 밖에서 사먹는 것은 가격차이가 컸다. 하지만 그 KFC는 도리어 식비를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킨은 항상 옳다. 다음주 목요일에도 Thurs day special이 있었다. 그 다음주도 그리고 그 다음주도. 어느새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Thurs day gu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You know what I want”라고 되 받아 쳤다. 나중엔 비싼 레스토랑에서 늘 먹는 것을 시키는 느낌으로 “The usual”이라고 말하니 그 직원도 유쾌하게 되받아 주었다.
KFC 치킨을 구매한 뒤엔 댄 머피에 들려 그날의 할인 주류를 사다 마셨다. 주로 맥주를 한 박스 통채로 샀다. 그렇게 사면 병 맥주 한 병에 1500원도 안했다. 가끔은 양주를 사 마셨다. 덜덜이의 조수석에 맥주 한 박스와 내 팔로 한아름 잡히는 원형의 치킨 박스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일용할 양식을 덜덜이 옆에 태우고 석양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길은 최고였다. 호주에는 고층 건물이 많지 않다보니 어딜 가든 하늘이 잘 보였다. 슬슬 대지와 맞닿을 준비를 하는 태양도 선명했고, 낮은 지붕위를 미끄러지는 황금빛도 늘 눈부셨다. 매일매일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매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회에서 인정한 경로를 내 최선의 노력으로 이루기 위해 굳이 다투지 않고. 거대하고, 장엄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도. 일생 일대의 숭고한 도전이 없어도. 그저 하루 하루 나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삶.
어렸을 때 30무렵의 나이이면 적당히 좋은 차에 양복을 입고 출퇴근 할 줄 알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 1~2개 딸린 공간에서 지낼 거라 상상했다. 퇴근 후엔 운동을 하거나 다른 취미 활도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혹은 집에서 혼자 적당한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살 줄 알았다. 저녁은 내가 적당히 요리해 먹으며 그렇게 잘 살거라는 꿈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행복한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3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나는 상상과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흙먼지 잔득 묻은 옷차림에 차는 연식이 18~19년은 되는 똥차 였다. 한국에서 자리 잡기는 커녕 외국인 노동자 신세였다. 물론 내가 원해서 왔지만 고등학생 때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당시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 날 노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유독 편했다. 조수석에 있는 맥주 박스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치킨 만으로도 하루가 만족스러웠다.
‘진작 이렇게 좀 즐기면서 살걸. 내 마음에 여유를 좀 더 허락했어도 됐을 텐데’
곧 비자가 만료되면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해야 하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 현실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눈앞의 노을덕에 이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서 나는 삶의 가치라 할만한 것들을 되짚어 보고 싶어졌다.
‘미래의 경제적 안정만을 위해 현재를 그저 버텨내기만 한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눈앞의 황금 빛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창고에 쌓인 황금 보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부서져 흐르는 황금빛 노을이 어쩌면 우리 마음을 더 가득채우지 않을까?’
매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회에서 정해준 경로를 내 최선의 노력으로 이루기 위해 굳이 다투지 않아도 되는 삶. 거대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도 그저 하루 하루 나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삶. 학업, 취업, 결혼, 출산이라는 숙제가 뚜렷하지 않은 삶. 오로지 내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내려도 그것 만으로 충만한 삶. 물질정 풍요보다 저마다의 정시적, 정서적 풍요를 더 가치있게 봐주는 삶.
어느새 이 곳의 삶과 철학에 물든 내가 보였다. 그렇게 나의 영혼에 조국이 새긴 각인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서글펐다. 그간 곳간에 황금 빛 벼이삭을 쌓느라 황금빛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못누린 내가 참 안돼보였다. 충만한 맛과 씁쓸한 맛이 섞인 음식을 애써 삼키는 듯 했다.